왜 마지막 거인을 탐했을까
왜 마지막 거인을 탐했을까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3.07.23 17: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 엿보기

며칠째 하염없이 장맛비가 내린다.

통유리 가득 장음 `-'을 의미하는 모스 부호 `-····-'가 씨줄의 빗방울로 또르르 구르며 긴 발을 친다. 111 카페 이름과 절묘한 조합이다. 2층 창밖 테라스 위로 새겨지는 수많은 상형문자를 오늘은 기필코 읽기로 했다.

하늘 향해 쏘아 올린 저 무거운 장음, 포화 상태의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절절한 메시지로 독해한다. 프랑수아 플라스의 `마지막 거인'에 나오는 어머니성의 대표 안탈라가 우리에게 보내는 상형문자 같다.

인간의 발자국 드문 첩첩 골골 아득한 골짜기에 삼천 년 동안 존재해 온 마지막 거인국이 존재한다. 지리학자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트모어'는 늙은 뱃사람에게서 `거인의 이齒를 사서 이빨 안쪽에 새겨진 미세한 지도를 따라 거인국을 찾아낸다.

우여곡절 끝에 거인국에 도착한 아치볼드는 거인국 사람들의 극진한 보호를 받고 돌아와 거인국 실재 보고서를 써서 대중에게 발표한다. 물론 거인국이 실재한다는 엄청난 비밀을 꾹 참고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여섯 마리의 송아지가 끄는 마차에 실려 다가오는, 아름답고 숭고한 거인 안탈라의 머리가 보였다. 나는 갑자기 온갖 소란 속에서 분노와 공포와 고통에 사로잡혀 침묵에 빠져 들고 말았다. 깊이를 모를 심연의 슬픔, 그 밑바닥에서 감미로운 목소리가, 아! 너무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말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천상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별과 대화하고 꽃, 나무, 강, 별 등 자연물의 문양이 바람에 의해 온몸에 채록되는 거인국 사람들, 그들은 원시 자연 상태의 무위자연인, 너무나 아름다운 족속이다.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처럼 이 세상 어딘가에 원형 상태로 존재했던 숭고한 나라, 적어도 문명에서 온 침입자 인간을 사념 없이 받아주고 따뜻하게 돌봐주기 전까지는 평온하게 존재하던 곳이다.

아치볼드는 왜 마지막 거인국을 탐했을까?

우리는 왜 원시 공간을 함부로 욕망했을까?

이제는 인간의 무거운 욕망에 눌린 아마존 같은 생태 공간이 인류에게 전하는 간절한 말에 귀 기울일 때이다.

“침묵할 수 있겠니?”

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과 명예욕에 들떠 우정을 배반한 이기적인 문명인, 바로 우리가 모두 마지막 거인국, 아름다운 모성적 공간을 파헤친 패륜들이다. 밀림의 정글이 무너지고 인공도시가 세워지면서 이 땅의 모성적 자연 공간인 마지막 거인국도 사라지는 중이다.

자연의 비언어적인 문장까지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없이 후두둑거리며 동그란 문양을 만들어 내는 장맛비에서 어떤 시인은 황소의 순한 눈망울을 읽어내고 어떤 시인은 하늘 품은 연못을 상상한다.

창을 타고 내리는 저 빗방울의 장음이 마지막 거인국 안탈라의 애절한 눈물로 읽히는 걸 뭘까. 우리를 지켜줄 순 없었니.

우리가 던진 부메랑이 되돌아온다. 이제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멀리 바라보아야 한다. 외물과 자아가 하나 되는 물아일체의 삶, 우리 삶을 가볍게 하고 삶을 무겁게 하는 것들을 찾아 중력을 빼내야만 한다.

박홍규 시인의 시구처럼 `나는 중력의 영점을 향해 가라앉고 있어. 새로 빚은 빗방울 아래를 향하듯'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