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걸리지 않는 삶
그물에 걸리지 않는 삶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3.07.1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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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낯선 여행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안면도를 향해 달려가는 차도의 작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이 길을 여러 번 지나갔다. 무심코 지나친 이정표가 오늘따라 눈에 가득하다. 방향을 돌려 이정표를 따라갔다. 구불구불 이정표 따라 목적지에 다다르니 폐교를 이용한 미술관이다.

야외 곳곳에 미술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느릿느릿 설치 미술 작품을 둘러보고 본관으로 향했다. 복도 벽에 걸린 작품과 교실 안에 전시된 작품이 질박한 포근함으로 다가온다. 미술 작품을 보는 안목은 없지만 절로 마음이 안온해진다.

서산 서해미술관은 1970년대에 지어진 학교건물을 개조했다. 정태궁 화가가 2003년 사비로 폐교를 매입해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서산의 1호 공식 미술관이다. 교실 5칸으로 이루어진 서해미술관은 정 화백의 창작공간이자 지역 작가들의 전시공간이다.

정 화백은 처음 보는 우리 일행을 환대한다. 잠시 차담을 나누었다. 청주에서 왔다고 하자 정 화백은 춘부장께서 법주사에서 수행하던 중 환속하여 자신이 태어났단다.

사람은 누구나 말 못 할 사연은 숨기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말 못 할 사연까지도 타인에게 털어놓는 사람은 모든 굴레의 얽매임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자신의 부끄러움까지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떨어놓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기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흉금을 털어놓는가 보다. 거리낌 없이 자신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정 화백의 인품이 구도자다.

정 화백의 작품은 자연소재인 목판에 조각한다. 그리고 색을 입힌 후 다양한 재료들을 덧붙이는 형식이다.

화가로 50년을 활동하면서 현대 미술의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단다. 캔버스에 그리는 익숙한 편견을 뒤로하고 나무판 위에 이미지와 형상을 덧붙이고 있다.

나무와 돌과 색채의 결합을 통한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하고 있다. 자연은 영혼의 상징이며 예술은 자연을 축소하거나 변형한 것이라고 했다.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이야기가 작품마다 가득하다.

자연이 그렇듯 지킬 것은 지키면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정 화백의 도전이 진정한 예술인의 정신이다.

서산에서 오랫동안 교직 생활을 하고 작품 활동을 해온 정 화백은 학창 시절 시인을 꿈꾸었단다. 시가 어려워 그림을 그린단다. 그래서 화가는 시인이 부럽고 시인은 화가가 부러워 서로의 마음이 교감하였는지도 모른다. 정 화백의 삶을 들여다보고 차를 대접받은 답례로 시 한 편을 낭송했다.

정 화백은 대학에 들어가서 붓을 잡았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 오히려 화가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선입견 없이 세상의 만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눈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작품마다 생명의 원천에 대한 그리움에서 나오는 `섭리`를 담고 있단다. 본래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좋은 작품은 꾸밈없이 자연스럽단다. 걸림이 없어 고요하고 평온하게 항상 새로워서 즐거움과 멋이 있단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단다.

그리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단다. 달관의 미소로 자신의 삶을 피력하는 모습이 경지에 도달한 성인이다.

바람은 그물을 찢지 않는다.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정태궁 화백의 삶을 닮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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