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 걸다 -그레나다에서
풍경 하나 걸다 -그레나다에서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3.07.1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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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아들은 낳으면 배를 타고 딸을 낳으면 비행기를 탄다고, 딸 덕에 생각지도 못한 카리브 여행을 다 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나는 그레나다의 풍경 하나를 단다. 그레나다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바베이도스, 자메이카, 수리남 등을 비롯해 카리콤의 14개국 회원국 중 하나다. 카리콤은 영토나 인구 면에서 작은 나라들로 밀집되어 있지만,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해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13개국이 BIE 회원국으로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해 표밭 다지기에 좋은 곳이다. 얼마 전 한덕수 국무총리가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지지를 위해 카리콤을 다녀가셔서 늦은 풍경 하나하나를 꺼낸다.

오늘은 카리브해와 북대서양 사이에 있는 윈드워드 제도의 가장 남쪽에 있는 작은 나라, 그레나다를 떠나기 전 수중 조각공원을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가 묵은 숙소 앞에 그랜드 안세 해변 야자수 나무와 망고나무는 모래사장 위에서 관광객에게 멋진 그늘을 만들어 준다. 생각지도 못한 여행길, 에메랄드빛 카리브해는 나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생전 처음 스쿠버 다이빙 옷을 입고 어설프게 스쿠버다이버 틈에 합세해 유람선에 올랐다. 2m나 넘은 건장한 남성이 유람선을 운전하고 작고 마른 남성이 운전하는 선박 위에 원숭이처럼 앉아서 우리와 마주했다. 나는 바다 위에 그려진 이 그림만이라도 흡족한 터라 유심히 그들의 동태를 살폈다. 내게 이국적 풍경 하나가 펼쳐진 것이다.

론드 아일랜드섬에서 다른 관광객을 태우고 유람선은 수중 조각공원이 있는 몰리네어로 떠났다. 몰리네어는 스쿠버다이버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영국의 조각 작가 제이슨 테일러가 800평방미터에 65개 이상 조각상을 설치하면서 스노클링 관광산업으로 명소가 되고 있다. 테일러가 바다에 이곳 원주민들의 표정과 생활사를 최대한 살리려고 애썼다고 한다. 조각상이 있는 몰리네어에 도착하자 배를 정차시키고 다이빙을 하라고 한다. 아이들이 원을 그리며 손에 손을 잡은 수중조각이 보인다. 바다에 뛰어들어 조금 구경을 하다가 배에 올랐다. 유람선 가운데 투명 아크릴판으로 되어 있어 바닷속을 볼 수 있다. 한참 보다가 어지러워서 이 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에는 끝없이 펼쳐진 카리브해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나는 일 층과 이 층을 오가며 낭만을 즐겼다.

바닷물고기와 산호초가 아름다운 곳이라며 배를 바다 위에 정차하고 바다에서 세 시간 다이빙하며 즐기라고 한다. 30분쯤 지났을까?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산호초도 물고기도 다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저 맑은 공기가 있는 곳에서 쉬고 싶을 뿐이다. 동행한 딸도 엄마를 닮았는지 찡그린 표정으로 다이버를 부른다. 모녀는 고기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다. 배가 홀쭉해지도록 열심히 퍼 줬다. 다른 사람들은 스쿠버 다이빙하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우리 모녀는 배 바닥에 가자미처럼 누워서 끙끙 앓았다. 일렁거리는 배 안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지 딸은 다이버에게 섬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무인도 바위 밑에 누워있는 딸을 보며 따라가지 못한 엄마의 무정함이 끙끙 앓으면서도 머리에서 미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3시간이 지났는지 스쿠버 다이빙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배에 오르기 시작한다. 딸은 아직 건너편 바위 밑에서 축 처진 채 누워 있다. 얼른 데려오라고 다이버에게 독촉했다. 모녀 상봉의 기쁨은 뒤로하고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축 처진 몸으로 정신없이 눈만 껌벅거렸다. 그 와중에도 통통 배에 올라탄 여섯 명의 어린아이가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이 참 신기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린 해적들이 훈련하는 것 같다.

푸른 바다 위 작은 배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즐기는 모습은 그들만의 누릴 수 있는 멋진 시공간이다. 딸 둔덕에 비행기도 타고 배도 탔다. 나 또한 아름다운 풍경 하나가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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