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
친정집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3.07.1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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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그동안의 염려는 기우였다.

기저귀가방을 비롯해서 들고 온 짐들이 한 가득이지만 맨발로 맞이하듯 반가운 마음 끝없기에 그렇다.

터줏대감마냥 찾아든 차림새마저 신기하기까지 하다. 언제 저리 변했나 싶어 새로운 인생의 화폭을 즐겁게 바라본다.

한적했던 집안이 분주해졌다. 아기울음소리가 음악이 되어 귀를 자극하고 있다.

한 생명의 탄생이 귀하고 귀할진대 곁에서 보는 것조차 감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어떻게든 친정나들이가 편하기를 바라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우리 두 내외의 일상은 이렇게 온갖 관심과 시선으로 딸과 아기를 위한 배려에 들어갔다.

대견키만 하다.

엄마가 된 모습에서 위대함마저 발견한다.

늦은 결혼이 될까봐 염려했었고 출산하기까지도 조심스러웠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동안 그 부분도 효도라 생각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자식의 인생행로가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친정이라는 말이 푸근하게 연상된다.

어쩌면 내가 딸에게 전해 듣고 싶은 한 마디인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가슴속에 남아있는 잔영 때문일까.

중요한 행사가 아니면 친정집에 나서기를 꺼려했던 기억이 마음을 흔드는 순간이다.

알 수 없는 거리감, 친엄마가 아니어서라는 스스로의 잣대에 휘둘림 당했던 날들이 조용한 물길로 스며 나온다.

내면의 우울했던 그림이 환하게 바꾸어지고 있다.

여전히 제집으로 착각하듯 아기와 짐들로 가득 채워 놓은 상태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마냥 넉넉하게 맞으며 보살펴주고 싶은 심정이 바로 친정엄마의 마음인가보다.

내가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안개속의 사랑이 이런 것일까. 이제야 아둔함의 눈길이 열리고 있다. 아침 해가 걷어낸 대지위로 환한 빛이 사방에 흩뿌려지듯 지금 딸에게 향하는 온갖 처지를 보면서다.

나를 칭하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한 없이 편하고 부드럽게 친정엄마라는 그 이름을 오래도록 지니고 싶다.

수많은 어휘 속에서도 놓치기 싫은 호칭, 혈관 깊숙이 타고 올라 생명줄을 이어주는 따뜻한 이름이 아니던가. 부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푸근한 느낌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을 할까.

친정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집만 홀로 고향에 남았다. 가끔은 찾아가는 내 발걸음 속에 여러 가지 미련들이 고개를 내밀어 보인다. 나이를 먹었나보다.

굳게 닫힌 대문사이로 흘러나오는 지난날들의 이야기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도록 하고 있으니 놀랍다.

여러 부분 부족할지언정 지금의 의식세계가 그곳에서 마디마디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풀꽃과 같은 사랑이었지만 과거와 현재를 떨기로 피어날 수 있도록 지켜준 곳이 확실했다.

거대한 무형의 존재아래 오늘까지 살 수 있었다.

오랫동안 느끼기에 부족했고 어깨를 덮기에 짧았던 친정의 그늘은 영혼의 보루였다.

가족이라는 내면 깊숙했던 사랑의 물길은 결코 딴 곳으로 흘러갈 수 없었다. 갈수록 촉촉한 그리움에 시달리는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내게 친정엄마라는 호칭 하나 더해진 이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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