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무새 날리기
껄무새 날리기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7.1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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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잠깐 잠들었는가 싶었는데 눈이 떠지더니 잠이 안 온다. 누워있어도 잡생각만 분주하게 돌아다닐 뿐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낮에 마신 커피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일이 벌이질 줄 뻔히 알면서도 그 향기로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홀짝홀짝 한 잔을 다 비웠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중에 “껄무새”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했을 걸의 껄과, 앵무새의 무새가 합해져서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복잡다단한 시절을 살아내면서 이러면 좋았을 걸, 저러면 좋았을 걸, 하는 현대인들의 자조가 껄무새라는 웃픈 새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나도 하루인들 껄무새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오늘 만난 지인에게 이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았을 걸, 야식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내 마음속의 껄무새가 수시로 껄, 껄, 껄, 하고 목청을 돋운다.

얼마 전에 있었던 트롯오디션에서 우승이 거의 확실시되던 한 후보가 학폭 논란으로 도중하차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철모르던 때의 실수를 가지고 앞 길 창창한 젊은이를 매장하는 것은 과한 처사라고 그의 팬들은 들고 일어났지만, 학폭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최대치에 이른 이 시점에 아무 일 없었던 듯 무마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열렬한 박수와 환호 속에 우승의 목전까지 간 그였기에 포기하고 내려오는 길은 더욱 쓰리고 아팠을 것이다.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며 살고 있는 한 인간으로 그의 실수가 안타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폭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지 않은가? 다른 누군가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으니 그 또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인상 좋고 노래 잘 부르던 그 젊은이의 가슴속에서도 껄무새는 껄껄 울었을 것이다. 그 때 그러지 않았을 걸, 회한의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선 굵은 연기를 보였던 한 연기자가 각종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연예인이 아닌 범죄인으로 카메라 앞에 선 그를 보면서 나는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가 마약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고단함이었을까? 분에 넘치는 성공이었을까? 이유야 어쨌든 대중의 절대적 사랑을 받았던 그는 같은 대중으로부터 절대적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의 마음속에서도 껄무새는 껄껄껄껄 밤낮으로 울었을 것이다. 그의 심장을 쪼아대며 피 흘리게 했을 것이다.

사방이 위험한 세상이다.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많은 이를 죽음으로 내 몬 전세사기, 정신을 아무리 똑바로 차려도 한 순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유혹 또한 많은 세상이다. 어린 청소년들에게 조차 마약이 뿌려지고, 온라인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가 끈끈이처럼 우리의 아이들이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어찌 바른 선택만 하며 살 수 있겠는가? 어찌 후회할 일이 없겠는가? 오죽하면 껄무새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새를 만들어 냈겠는가?

그렇다고 후회일색으로만 살아서도 안 될 일이다. 잘못한 일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었다면 껄무새 같은 것은 날려 보내고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찾아보는 것이 또 다른 껄무새를 만나지 않는 비결이 될 것이다. 희망의 파랑새를 불러들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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