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서 가능성 … 백운화상 어록 연계 연구 필요”
“실용서 가능성 … 백운화상 어록 연계 연구 필요”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3.07.10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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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문화유산 직지 청주의 미래유산 C-콘텐츠로
③ 외국 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직지, 그리고 콘텐츠
BNF 전시장서 만난 야닉 브뤼느통 佛 동양학부 교수
“구입하기 어려운 직지 … 서점 판매로 대중들에 다가가야”
고려시대 과거시험 교과서·한 권으로 출간 가능성도
내년엔 `백운화상어록과 직지' 프랑스어 책 출간 계획
세계 最古 불구 지자체 등 지원 열악 … 연구 예산 필요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전시된 직지 모습. /연지민기자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전시된 직지 모습. /연지민기자

파리 취재 이튿날, 다시 찾은 프랑스국립도서관((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이하 BNF) 전시장은 조용한 가운데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 전시 관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직지를 관람하기 위해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는 물론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직지 원본을 보려고 먼 나라까지 찾게 하는 흡입력을 직지 콘텐츠로 전환할 방법은 무엇일까?

야닉 브뤼느통 교수
야닉 브뤼느통 교수

 

30년간 고려 불교와 한국사 연구에 매진해온 야닉 브뤼느통(Yannick Bruneton) 파리 7대학 동양학부 교수를 파리에서 만났다. 한국어를 전공한 브뤼니통 교수는 젊은 시절 한국의 스님과 인연을 맺으면서 선시(禪詩)를 접했다고 한다. 세상 이치와 깨달음을 시로 풀어낸 선시에 매료돼 선시를 연구하다 백운화상을 알게 됐고, 백운화상의 어록을 연구하면서 직지를 만나게 됐다. 고려불교 연구자로 외국 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직지 콘텐츠는 무엇일까.



# 야닉 브뤼느통 佛 동양학부 교수

-서점 판매로 대중들에게 다가가야

직지 이야기를 꺼내자 야닉 브뤼느통 교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그는 “직지를 왜 서점에서 구할 수 없나? 직지를 연구하는 사람도 직지 책을 구입하기 어렵다”면서 “청주시에서 비매품으로 직지 영인본을 발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엇보다 대중들이 직지가 어떤 책인지 읽고 알 수 있도록 서점에서 판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니 청주고인쇄박물관 건립 30년이 지났지만, 지금껏 청주시나 고인쇄박물관이 대중 서적으로 내놓은 직지는 없다. 이는 연구자들을 위한 직지로만 한정 짓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질문으로 핵심을 찔렀다.


-많은 사람이 읽고 보고 사용했다는 게 의미

브뤼느통 교수는 “직지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연구가 나와야 한다. 본문의 행간을 읽어내려면 직지 책에 쓰인 상징들을 알아야 해석할 수 있다. 상징 코드를 알고 문장을 이해해야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며 “책 맨 위에 남아있는 동그라미는 왜 그렸을까, 얼룩은 무엇 때문에 생겨났을까, 붉은 색칠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여러 각도로 연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직지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본문에 적힌 구음이나 해석을 한 표시 등 페이지마다 적힌 글자들은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며 활용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구텐베르크 성서는 성직자들이 종교의식에 사용한 것으로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직지는 실용서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고려시대 승과시험 보는 실용서 가능성

직지가 실용서일 가능성의 근거로 고려시대의 사회적 배경에 근거한다. 직지가 간행된 고려시대는 과거시험에 승과가 있었는데 스님들이 승과 시험을 치르기 위한 교과서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그런가 하면 직지가 한 권으로 된 책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한 권으로 제작됐지만 더 많은 사람이 돌려 읽을 수 있도록 2권으로 분권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브뤼느통 교수는 “직지가 상권과 하권으로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BNF에 있는 하권은 표지가 훼손돼 알 수 없다. 한 권으로 출간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고정된 생각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질문하고 연구해서 다양한 직지로 만들어야 한다. 단지 불경서라는 이유로 한정적인 해석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전시를 보기 위해 프랑스국립도서관을 방문한 싱가포츠 가족들.
전시를 보기 위해 프랑스국립도서관을 방문한 싱가포츠 가족들.

직지를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해선 백운화상 어록과 연계한 직지 연구와 해석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백운화상이 입적한 경기도 여주 취암사에서 사후에 간행한 직지목판본과 직지금속활자본의 비교연구도 직지를 콘텐츠화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브뤼느통 교수는 직지를 알리기 위해 BNF 홈페이지에 자신이 연구한 자료를 `한국의 인쇄술'과 `백운과 그의 시대', `직지-알려진 가장 오래된 활판인쇄본' 등 3개 주제로 올려 그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직지 프랑스어판 출간에 이어 내년에는 백운화상어록과 직지를 한 권의 프랑스어 책으로 엮어 출간할 계획이다.

다시 찾은 BNF 전시장에서 직지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여러 번 봐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말처럼 직지는 책이라는 형태 너머에 있는 옛 사람들의 흔적을 돋을새김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문장의 이해를 돕고 읽기 편하게 토를 달아놓은 구결(口訣)에서 오래전 누군가의 손길도 느껴지고, 페이지마다 긴 세로줄이 인쇄된 곳에선 금속활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처럼 직지 원본에는 누군가가 책을 보며 남긴 미세한 흔적은 물론 직지가 제작되는 과정까지를 알 수 있는 실마리들이 깨알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직지 전문가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직지를 연구하는 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는 세계 최고(最古)라는 직지의 이미지에만 과몰입한 채 직지를 연구하는 데는 간과했기 때문이다. 직지를 깊이 연구하고 싶어도 지자체의 지원 예산이나 연구환경은 열악하다. 직지 연구자료도 부족한데다 연구자가 직지를 연구하려면 자비를 들여 파리로 가야 한다는 현실적 문제와 BNF의 서고가 호락호락하게 개방하지 않아 연구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직지의 고장이라는 거대한 포장 이면에는 직지의 부재라는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직지에 대한 연구 토대 마련도 미뤄 온 결과다.

/연지민기자

annay2@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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