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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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3.07.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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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사랑과 죽음의 결합인가. 여인은 벼랑 끝에서 무릎을 꿇고 벼랑 끝에 발끝을 세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불안한 열정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한없이 믿고 신뢰한다는 듯 자기 얼굴을 감싸고 볼에 입맞춤하는 남자의 한 손을 살며시 잡고 있다.

여인은 꿈을 꾸는 듯 눈을 감았다. 발그레한 얼굴은 성적 황홀경을 느끼고 난 것처럼 빛이 감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남녀가 금빛 속에서 나누는 키스는 신비하고 매력적이어서 많은 관람객 틈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곱슬머리 남자가 착용한 의상의 무늬는 직사각형으로 완강하고 힘차 보인다.

여자의 긴 원피스에는 원형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부드럽고 수동적이다. 추상적인 무늬와 꽃, 바닥의 정형화된 형상들은 화려하다.

포옹한 채 황금색 천에 둘러싸인 두 사람의 구별은 희미하지만, 기하학적인 옷의 문양이 확연하게 남녀를 구분해놓았다.

그림에 대한 지식도 없는 내가 봐도 구성과 편집이 기이하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통해 현실 너머의 본질적 관계를 성찰하라는 건가.

포옹하고 있지만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것 같지도 않다.

왠지 외부와 단절된 그들만의 관계 같아 쓸쓸해 보이는 건 나만의 해석일까.

오스트리아의 장 궁전 미술관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만났다. 운 좋게 개관 300주년 기념으로 클림트의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많은 명화 중, 한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복사본으로만 감상하던 `키스'다. 남자에게 안겨 있는 여자의 표정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여서 유달리 마음속으로 깊게 들어오는 그림이다.

한때는 외설로 여겨졌던 클림트의 작품들이 지금은 관능미와 에로티시즘으로 찬양받는다고 하니 세상이 바뀌었다.

그의 작품 앞에 서서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개인적인 감정조차 숨길 필요 없이 모두 스스럼이 없다.

내게서도 인간의 육체가 발하는 미묘함이 느껴지는 게 자연스럽다.

오스트리아의 미술계를 선도했던 클림트지만 시대를 앞서간 화가는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작품을 그린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고 한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많은 여자와 염문을 뿌리며 영감을 얻었던 고독한 작가는 현실 세계와 환상세계를 몽환적으로 중첩 시기고 죽음과 염세주의, 관능과 에로티시즘을 고집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은 화가로서의 우월한 자존감이 존경스럽다.

작가는 자기 작품을 설명하지 않아야 한다.

`예술가로서 클림트를 알고 싶다면 내 작품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라'라는 그의 말처럼 보는 이마다 해석이 다른 `키스'의 주인공 남자는 클림트이고 여자는 그의 영원한 정신적 사랑이었던 에밀리 플뢰게라고 추정할 뿐이라고 한다.

클림트는 작품을 설명하지 않았다. 상상은 완벽하게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

작가가 그림 속에서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비 내리는 중세의 거리를 걸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서 설명하려는 습관을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자신감이 부족해서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사정없이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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