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전에 지불된 사진값
69년 전에 지불된 사진값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3.07.0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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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매년 여름 사진을 찍는다. 휴대전화가 모두에게 보급되면서 누구나 언제든지 찍을 수 있는 것이 사진이라지만, 1년에 한번 시간을 내어 사진관에 가서 찍는다. 제법 몇 년 사진이 쌓이니 작은 역사처럼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서 거추장스럽던 긴 머리가 짧게 바뀌거나 포토샵으로도 숨길 수 없게 점점 주름이 깊어져 변해가는 얼굴을 보면 시간이 쌓이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흔해진 사진이지만, 사진이 귀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도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을 아이가 우연히 찍어 보관한 휴대전화 속에서 발견한다거나, 기억도 희미한 옛집, 어릴 적 골목 사진을 볼 때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는 추억 속 시간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군사작전명인가 싶은 `Project Soldier(이하 프로젝트 솔져)' 역시 사진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한다. 비영리 사단법인 프로젝트 솔져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미국 및 UN 참전국 용사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유산을 기록한다.

자비로 시작한 이 일이 점점 커져서 2017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약 2,700여 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를 영상 인터뷰와 사진으로 기록했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말 외에 무엇으로 표현할까 싶기도 하다.

이 사단법인을 운영하는 사람은 라미 현 작가, 작가는 2016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군복 사진전에서 한국전 그러니까 6·25 참전용사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유엔군으로 참전한 살바토르 스칼라토(slavatore Scalato) 씨, 라미 작가는 자부심 가득한 그의 눈빛이 좋아 사진 촬영을 요청했는데, 인화 후 사진에서도 빛나는 그 눈빛의 이유가 궁금해졌단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나라, 영국, 미국, 프랑스, 캐나다, 터키, 에티오피아 등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6·25 참전용사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에 담아내는 일을 한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는 19개의 동상이 있다. 이중 판초 우의를 입고 소총을 든 동상의 모델이 된 윌러엄 빌 베버 씨는 전투 중 오른팔을 잃었고, 후송 중 포탄을 맞아서 같은 날 오른쪽 다리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으로 후송되어 이중 수족을 차고 현역으로 복무한 첫 군인이 되었고 은퇴 후 메릴랜드 자택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자택에서의 촬영 후 액자에 담긴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다시 찾은 라미 작가에게 베버 씨는 무엇을 해주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많은 참전용사분들이 어떻게 사례하면 되냐고 물을 때마다 라미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69년 전에 이미 다 지불하셨습니다. 저는 다만 그 빚을 조금 갚는 것뿐입니다.”

베버 씨에게도 라미 작가는 그리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버 씨는 그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너희가 빚진 것은 하나도 없어. 자유를 가진 사람에게는 자유가 없거나 자유를 잃게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전하고 지켜줄 의무가 있단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이 의무를 지키기 위함이지.”

빚을 갚기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 자신의 팔과 다리를 희생하고도 그 모든 것이 자유를 지키기 위한 의무였다고 답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아름답구나 느껴졌다. 사진은 돈을 버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진은 현 시대를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달해주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배움을 그대로 실천하는 라미 작가를 보며 우리는 교육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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