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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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7.0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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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무심천으로 산책을 나섰다. 저만치에 벤치가 보인다. 앉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데려간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벤치로 가 앉았다. 시간에 쫓기며 살던 시절 얼마나 앉고 싶었던 의자인가. 이렇게 앉아 명상에 잠기고 싶었다. 아니 힘겨운 삶을 내려놓고 싶었다. 새벽이 오면 한가하려나, 저녁이 되면 내 시간이 있으려나, 비가 오는 날이면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으려나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나만의 시간은 늘 빗나가고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도 앉고 싶었던 벤치에 요즘은 마음만 먹으며 시간과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면 이렇게 앉는다. 등을 등받이에 대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바람 날개에 업혀 한가로이 노닌다. 너무나 평화로워 보인다. 지금 나처럼, 그 옛날 들판의 의자에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고도 안식을 얻던 내가 이제는 이렇게 앉아 위에 계신 분께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하고 나도 그분께 바람을 부탁하는 허물없는 친구가 되어 무언의 대화를 하며 놀고 있다.

막상 은백색이 되어 한가로이 벤치에 앉아 저 구름처럼 평화롭게 흘러간 일상을 곱씹으니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았던 것이 없다. 그리고 살아온 날을 반추하니 모든 것이 때와 기한이 있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해 아등바등 살아온 날들이 보인다. 어느 대목에서는 좀 더 안 휘려고 좀 더 안 꺾이려 내 의견만 고집한 곳에 가서는 매우 부끄럽다. 앞으론 배려하며 양보하며 정직하게 살자. 다짐도 해본다.

산책을 잠시 멈추고 벤치와 한 몸이 되고 보니 잠자리가 없는 노숙자가 와 누우면 포근한 침상이 되어줄 것 같고, 삶에 지쳐 마음이 무너질 때 찾아와 눈물 흘리면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에 안김 같이 마음에 안식을 얻을 것 같다. 때론 실타래처럼 엉켜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아 살 용기가 없어 낙담할 땐 발밑에서 두령이 없어도 집단을 이루고 잘 살아가는 개미의 모습에서는 용기를 얻기도 할 것 같다. 벤치는 마법사 같다고 생각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평상처럼 만든 돌의자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돌의자가 시야에 들어오면 빠뜨리지 않고 오늘처럼 이렇게 앉아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물놀이하다 추우면 뙤약볕에 달구어진 따끈따끈한 바위에 누워 젖은 머리와 옷을 말리던 추억 여행을 했는데.

오늘은 혼자 왔지만 가끔 그이와 함께 거닐 때면 잊지 않고 들리는 곳이 장미 공원이다. 하나의 의자에 나란히 앉아 배낭을 열고 가지고 온 간식을 먹으며 세상 소리를 듣는 것도 산책의 일부였다. 그리고 우리처럼 앉은 모습을 보이면 자기만의 공간에서 꿈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동경했노라고,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이 보이면 한가로이 수다 떠는 그들이 부러웠노라고 그때의 감정을 펴 보이기도 한다. 또 사방에서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차를 바라보면 어느새 달리는 차를 따라가 바쁜 일상에 들어가 있음을 느낀다고 감정을 솔직하게 일러준다.

현재를 바쁘게 사는 젊은이에게 `나도 한때는 그대들과 같이 바쁘게 사느라 곁눈 한번 돌릴 시간이 없었다오. 오늘처럼 벤치에 앉아 즐거운 명상에 취할 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오. 그대들도 메뚜기가 짐이 되기 전에,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지금처럼 열심히 살다 보면 명상에 잠길 때도, 잘 박힌 못 같이 안전한 환경도, 힘겨운 시간을 내려놓을 때도 올 겁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가로우면서도 평화로운 모습을 비춰주는 벤치의 주인이 되어 한 폭의 그림이 되어줄 날도 올 게 분명하다고' 읊조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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