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며 성장하는 나무 - 수국
나누며 성장하는 나무 - 수국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공예진흥팀장
  • 승인 2023.07.0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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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공예진흥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공예진흥팀장

 

무덥긴 무더운가 보다. 아침저녁 나절로 물을 퍼주는데도 잎이 축 늘어져 있다.

퇴근 후 넋이 나갈 정도로 지친 내 모습이나 이 녀석이 축 처진 모습이나 매한가지다. 움직일 수 없는 네가 무슨 힘이 있겠니 싶어 우물을 길어 물뿌리개에 담고 높이 들어 물세례다. 물뿌리개의 물줄기를 쳐진 잎들이 반갑게 맞는다.

시원한 우물을 맞는 녀석이 부럽다. 괜스레 나도 물뿌리개에 손을 넣고 팔뚝으로 목으로 물을 묻힌다. 시원하다. 서둘러 물을 줘야겠지 싶었다. 한두 포기도 아니고 이젠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려운 양으로 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물을 길어 들어 올리는 두레박의 무게가 버거워진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줘야 하는지? 불평은 필요 없다. 워낙 물을 좋아해서 이름도 `수국'이란다.

옆에 머위잎도 늘어져 있기는 매한가지. 한낮 뜨거운 햇살에 수분을 조금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 행동인 듯하다. 해가 지면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쌩쌩하다. 머윗대를 곧추세우고 얼굴을 가릴 만큼 큰 잎은 밤새 내리는 이슬을 받아낸다.

물 주기가 끝나갈 무렵 다행스럽게 수국이 기운을 찾았다. 그러잖아도 무거운 꽃송이를 애써 들어 올린다. 따가운 햇볕에 머리를 숙였지만, 부드러운 미소와 초롱초롱한 빛의 달과 별에 가까워지는 시간이 왔음을 몸짓으로 보여준다. 각기 다른 색과 꽃잎의 형태를 드러낸다. 어느 꽃잎 하나 도드라질 것 없이 단체로 형태를 드러낸다. 위아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이 녀석들의 형태는 늘 둥그렇다. 사방으로 펼쳐낸 잎이 모여 얼굴보다 더 큰 둥그런 풍선이 되었다.

매년 피워내는 꽃은 어느 해 한 번 화려하지 않은 적 없다. 한 해도 거른 적 없이 늘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워냈다. 같은 장소에서 해마다 꽃을 피워내니, 힘없이 꺾일 것 같은 가녀린 줄기가 제법 두꺼운 목질이 되었다. 이젠 제법 그늘을 만들어 낼 정도의 존재를 뽐낸다. 그 사이로 조금은 이른 풀벌레가 노래를 더한다. 공간을 터 준 사이로 바람이 벌레의 노래를 날라다 전한다. 벌레와 바람이 채운 나무, 수국이다.

다른 수국보다 일찍 꽃을 피웠던 별수국은 꽃의 색을 잃었다. 색을 잃은 꽃을 잘라내고 곧바로 삽목가지를 만들어낸다.

한 그루의 수국에서 100여개 이상의 삽수를 얻는다. 100여 송이의 꽃을 잘라내고 두 마디 정도로 가지를 자르고, 가장 밑 잎은 잘라내고 위 잎은 반쯤 남기고 잘라낸다. 가장 밑의 잎을 잘라낸 부분은 삽목할 흙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렇게 매년 작업을 하다 보니 어림잡아 천 포기 정도의 묘목을 얻는다.

해를 거듭하면서 몸이 익힌 기술이라 이젠 삽목 성공률이 100%다. 굳이 발근제를 쓰지 않아도, 웬만한 묘목은 모조리 삽목을 해서 번식을 할 정도에 이르렀다. 직업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렇게 번식을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년 나눔을 통해 숫자를 조절하고 있다.

다른 나무는 해를 거듭하며 연륜을 더하고 진한 그늘을 만들어내는 거목이 되는데, 이 녀석은 쉬 굵어지지도 자랑할 만한 높이로 클 수 없는 나무다.

워낙 태생이 그러하니 애써 클 생각도 없다. 나무라 불러주지도 않는 보잘것없는 덩치다. 그러나 깻잎 같은 튼실한 잎에 아이 얼굴만 한 꽃송이로 존재를 과시한다.

한 포기로 시작했던 수국이 이젠 온 집안을 둘렀다. 그리고 이 울타리를 넘어 다른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매년 늘어나는 양은 주변에 나눔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두려울 수는 있다. 그렇지만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있고, 기꺼이 사랑해주고 길러주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세찬 빗줄기, 장마를 두려워하지 않는 녀석 수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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