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단다
너만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단다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3.07.0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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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자식보다 손자가 더 사랑스럽다고 한다. 주변의 내 또래 할머니들이 모두 입 모아 하는 소리다.

나도 첫 손자인 준호가 유일한 손자처럼 사랑스럽다.

어미가 직장에 나가야 하는 형편으로 할머니인 내가 육아를 도맡아 한 탓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마음껏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여건마저 플러스 알파로 작용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얼마 전까지도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좋다고 했다. 전화할 때마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소리치던 손자, 내가 해주면 뭐든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녀석, 어미는 서운해했지만,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보답이라 당연시하며 나는 내내 행복했었다.

할미를 떠나 중고등학교, 대학 시절을 보내는 동안 찾아오는 횟수도 통화마저 뜸 해졌을 때에도 나는 곧잘 전화를 걸어 보고 싶다고 마음을 전하곤 했다.

“준호야, 잘 있는 겨? 너만 생각하면 내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따뜻한 바람이 불어야.”

사실 나는 네 아이를 키웠다. 첫 애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 그러니까 둘째가 5학년, 셋째가 3학년 그리고 막둥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중소기업을 한다고 설치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날벼락 같은 부도를 맞게 되었다. 십오 년 공든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날, 얼굴 들고 살 수 없으니 고향을 뜨자는 남편을 따라 서울행을 감행한 것이 나의 고생 시작이었다.

충격 탓인지 체면 탓인지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나의 고달픔은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진저리쳐지는 나날들이었다. 딱히 전문적인 어떤 기술도 없고 내 집 식구들 밥이나 겨우 끓이던 실력으로 10평 남짓한 작은 식당을 차리고 날밤을 새워가며 살아야 했으니 오죽했겠는가?

열흘 먹을 것만 있어도 때려치울 것 같은 괴롭고 힘든 식당 일. 싫어도, 어려워도 아이들 굶기지 않고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밤과 낮 구분없이 살아야 했다.

빚 갚으랴, 아이들 뒷바라지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라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기억마저 없다.

그저 허겁지겁 살기 바빠서 자식들을 마음껏 안아주고 사랑을 베풀지 못한 미진함이 마음속에 쌓인 탓인지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그저 사랑만 쏟으면 되는 손자 사랑은 어쩌면 할미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첫 손자인 준호를 품에 안았을 때의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기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치솟는 사랑,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행복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끝없이 솟구쳐오르는 것, 손자 사랑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다 늙어서 느끼는 행복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이쯤에서 감성이 되살아나 시를 쓰게 된 것이니 손자 사랑은 내게 구원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 아이들과 행복해야 할 나의 3~40대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둥거린 생각뿐 뭉텅 굵직한 한 토막으로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준호는 이제 다 자라서 학교 졸업과 함께 취직도 거뜬히 해낸 자랑스러운 젊은이가 되었는데 아직도 열 살 정도의 사랑하는 손자로 내 안에 머물러 있다.

“준호야, 어제 내려올래? 할미랑 축하파티 해야지?”

“너무 바빠요, 다시 전화할게요”

들뜬 목소리, 건성 대답은 섭섭함보다 대견함으로 이젠 자랑스러워해야 할 처지다.

“여자친구랑 같이 와, 할미가 맛있는 것 많이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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