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상술(相術)
그녀의 상술(相術)
  • 박윤미 충주 노은중 교사
  • 승인 2023.07.0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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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윤미 충주 노은중 교사
박윤미 충주 노은중 교사

 

문이 열리면 초승달 같은 눈꼬리가 먼저 들어온다. 코로나 시기에 처음 만났으니 마스크 쓴 모습만 봤는데도 항상 웃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두 달마다 우리 집에 와서 공기청정기를 관리해 준다. 작은 체구에 약간 곱슬한 머리칼을 뒤로 단정하게 모아 올렸고, 앞 머리칼도 이마 한쪽 끝으로 가지런하게 붙였다. 콧잔등 윗부분에 있는 주근깨마저 서글서글하게 웃는 듯하다.

오늘은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걸치고 양손 가득 여러 가지 물건을 들고 들어선다. 짐 때문에 한 발씩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힘든 내색 없이 역시나 웃는 얼굴로 명절 잘 보내셨냐고 묻는데, 한참이나 지난 명절 인사가 새삼스러워서 나는 간단히 답했다.

그녀는 두 손의 짐과 어깨 위의 가방을 거실 한쪽에 내려놓고는 내게 명절에 어디 다녀왔는지 묻고는 아까보다는 좀 더 성의 있는 답을 기다린다는 듯 눈을 맞추며 고갯짓까지 까딱했다. 나는 결국 명절을 어디 가서 어떻게 보냈는지 제대로 말해야 했다.

그러던 중 에이미가 나왔다. 그녀는 자세를 낮춰 에이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이쁜이이이-, 보고 싶었다.' 이런다. 우리 고양이 볼살을 그렇게 만지는 사람은 처음이다. 사람 좋아하는 에이미도 당황했을 텐데, 구시렁거리면서도 싫지 않은지 손님 옆을 떠나지 않는다.

공기청정기 관리 담당자가 바뀐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두 달에 한 번 방문하는데, 지난 만남, 그러니까 고작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공기청정기를 다른 기종으로 바꾸는 데 동의했다. 전 담당자가 여러 번 시도했지만 나는 절대 넘어가지 않았었다. 그것이 아홉 번의 도끼질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나는 이번 담당자가 단 한 번 제안했을 뿐인데도 선뜻 넘어가 주었다. 그래서 오늘 그에 대한 보답으로 사은품을 두 손 가득 가져온 것이다. 소소한 것들이지만 모두 쓸모 있는 것들이다. 딱 맘에 든다.

이분의 매력은 우리 집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점이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가? 눈꼬리에 달린 웃음, 작고 동글동글한 외모, 허스키하고 약간 들뜬 목소리, 처음 만나는 데도 사람이나 고양이나 여러 번 본 듯 친숙하게 대하는 모습, 적당한 관심, 무엇보다 선한 느낌. 그중 어떤 것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는지 순위를 정할 수 없다며 우리는 웃었다.

나는 여기까지 글을 쓰고, 글의 제목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글의 방향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 또다시 그녀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 그런데 오늘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나는 좀 더 길게 인사할 준비를 했는데, 그녀의 인사는 짧기만 하다. 마중 나온 에이미를 만져주지도 않는다. 곧장 공기청정기를 분리하여 닦으며 전화기 너머 누군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눈꼬리가 부드럽지 않다. 피곤한가? 근심이 있나?

나는 그녀와 언제 눈이 마주칠까, 그녀가 언제 말을 걸어올까, 나도 모르게 흘끔흘끔 그녀의 얼굴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 혼자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는 것에 웃음이 나는 것이었다.

두 달 후 그녀와 나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묘한 호기심과 설렘이 있다. 그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순수하게 전해지는 한 사람의 매력에 완전히 무장 해제되어 마음을 열었던 시간을 떠올리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내 마음속에서 그녀의 매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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