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부시 면담 해프닝
MB-부시 면담 해프닝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7.10.04 2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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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부장(천안)>

지난달 28일 한나라당이 이명박-부시 면담 계획을 전격 발표하자 대학의 한 정치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줬다.

"이명박 후보와 부시 미대통령의 회동 의의를 써내시오."

리포트 제출기한은 1박2일. 학생들이 인터넷과 언론매체를 섭렵하며 답을 찾으려 했으나 영 헷갈리기만 하다.

어떤 신문은 이 후보와 부시와의 만남의 의의를 한·미관계의 새 지평을 열 중대사라며 톱기사로 다루고, 또 다른 신문은 "부적절한 만남'이라며 그 배경에 대해 의문을 단다.

한나라당은 수권 정당인 자당 후보의 대외 위상을 알게 해주는 쾌거라고 대변인 논평을 내는가 하면 다른 당들은 사대주의 외교, 굴욕외교의 본보기라며 비난을 퍼붓는다.

학생들이 어려운 숙제를 내준 교수를 원망하며 정치학 배우기를 포기하고 학교를 떠났다. 지난 6일간 너무 혼란스러워 생각해본 가상 상황이지만, 아직 순수한 학생들에게 정치는 정말 어렵다.

지난 1일 백악관의 공식발표로 해프닝으로 끝난 "이명박-부시 면담 불발'의 파장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미디어 오늘은 3일자 인터넷판 기사를 통해 한 유력 일간지의 보도 행태를 "뻔뻔하다'는 격앙된 표현을 써가면서 꼬집었다.

대선 정국을 두 달여 앞두고 더구나 남북정상회담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부적절한 만남에 대해 아무런 비판없이 회담을 성사시킨 주역들의 무용담을, 그것도 마치 이명박 후보와 부시와의 만남이 시대가 요구하는 "막중대사'로 여기며 종합면에 도배한 그 언론에 대해 혹독하게 메스를 댔다.

또 다른 일간지도 "유력한 차기 주자가 최대의 동맹국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갖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반기는 사설을 썼다가 망신을 당했다.

한나라당으로 가보자. 벌써 수권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순탄가도를 달리던 한나라당은 부시와의 면담을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호재로 삼으려다 큰 상처를 입었다. 헛발질을 하다 쇠뭉치를 맨발로 차버린 꼴이다.

당내에서 벌써 이번 파문의 정점에 선 인사들을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인책론까지 일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당 차원의 망신을 떠나 국민들에게까지 비난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권과 가장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보수 언론 조선일보는 3일자 "국민 자존심 건드린 이명박 부시 면담 추진'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신랄하게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사대주의적 사고를 비판했다.

사설 말미에 던진 말은 비수처럼 한나라당에 꽂힐 만하다. "이(명박) 후보가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한 것은 이번 대선의 대세를 확실히 굳히겠다는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누가 미국 대통령을 몇 분 만나 사진 찍는다고 표를 찍어줄 20년 전 수준은 넘어섰다. 대선 후보의 그런 모습에 오히려 자존심 상해할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이 영원한 동지로 여기고 있는 조선일보가 던진 일갈이기에 이는 정말 뼈 아프게도 객관적()이다.

다시 언론으로 돌아가자. 이번 보도에서 기자들은 중요한 취재원칙을 외면했다. 수습시절부터 늘 귀가 따갑게 배우는, "보도자료를 믿지말라', "당사자에게 확인하라'는 아주 기본적인 철칙을.(부시와의 인터뷰가 어려웠다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최소한 취재원인 강영우 백악관 차관보에게 농락당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한나라당이 면담성사를 발표했을 때 "왜 하필 이런 때 비상식적인 면담을 하는가'라는 의문만 가졌어도 국민들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국민 차원의 인책을 하자.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죄, 국민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 죄, 그 당사자인 한나라당과 언론들은 왜 아직 사과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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