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값 인하
라면값 인하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3.07.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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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월급 빼고는 다 오른다는 시대에 내리는 것도 있다. 바로 라면값이다.

농심과 삼양라면 등 국내 라면업계가 지난 1일부터 일제히 라면값을 내렸다. 농심의 대표 라면인 신라면은 출고가가 4.5%(50원) 인하돼 소매점 판매가 기준으로 1000원에서 950원으로 내렸다.

삼양라면도 이달부터 대형마트 기준 5개들이 라면 판매가를 3840원에서 3680원으로 내린다. 삼양라면은 이달부터 삼양라면과 짜짜로니 등 12개 제품 가격을 평균 4.7%로 순차적으로 내린다고 밝혔다. 진라면 브랜드로 잘 알려진 오뚜기와 팔도라면도 인하 대열에 동참한다.

이번 라면 업계의 가격 인하 러시는 정부의 압박이 주효했다. 라면업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해 밀값 인상을 빌미로 라면값을 대폭 인상했다. 실제 최근 2년여 동안 국제 밀값은 두 배 이상 치솟았다. 라면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밀가루 가격의 인상은 당연히 라면값 인상의 빌미가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밀값이 제자리를 찾았는데도 라면값이 요지부동이자 정부가 칼을 빼 든 것이다.

정부의 압박은 강경한 제스처로 업계에 전해졌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TV 프로그램에 나와 국제 밀값의 하락세와 함께 라면값 인하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추 부총리는 당시 “지난해 9~10월에 (기업들이)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면서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놀란 업계는 즉각 반응했다. 불과 열흘도 안돼 라면업계는 추 부총리의 사인에 화답하기 시작했다. 농심에 이어 삼양, 오뚜기, 팔도 등 대다수 라면 제조사들은 물론 밀가루가 역시 주 원료인 제빵제과 업계도 제품 인하 준비에 나서고 있다. 제빵업계 역시 밀가루값 인상을 계기로 2년 전부터 빵과 제과 가격을 대폭 인상했었다.

이번 라면값 인하는 지난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농심이 신라면 값을 인하한 것은 2010년 안성탕면, 신라면 등의 가격을 2.7~7.1% 내린 이후 처음이다. 농심은 이번에 새우깡 가격도 1500원에서 1400원으로 5.9% 내렸다. 농심이 새우깡값을 인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어쩐지 시장은 라면값 인하에 당장은 그다지 환호하지 않는 분위기다. 인하 효과가 실질적으로 서민, 중산층 삶에 미칠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시중에서 팔리는 라면의 경우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4~5개 들이 번들 제품을 판매하면서 이른바 원플러스 행사 등 다양한 세일 정책을 통해 대량 판촉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체감하는 인하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라면의 경우 제조사들마다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1개에 2000원이 넘는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까지 출시된 상황이어서 소비자들의 다양한 선택권에 따라 이미 가격 부담을 줄일 여지가 충분한 상황이다.

어쨌든 이번 라면값 인하는 분명히 밀값 하락이라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업계 자율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업계가 정부의 개입 명분을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이례적으로 작용한 정부의 `보이는 손'. 명분없이 덩달아 인상 채비를 갖추고 있는 다른 소비재들에 경고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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