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분 노예로 승진했어요
5인분 노예로 승진했어요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3.06.2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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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비 내리는 여름날 아침이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에 우산을 쓰고 달달한 커피를 들고 뜨락으로 나갔다. 평소 나갈 때는 장화를 신고 장갑과 호미를 챙겨 전투태세를 갖추고 나간다. 오늘은 풀은 보지 말고 꽃만 보기로 다짐을 했다. 촉촉한 마당을 오랜만에 편안하게 걸었다.

인생정원 여백 서원에서 삽질을 하고 나무전지를 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그분을 보는 순간 누워서 TV를 보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단정하게 앉아서 들어야 할 이야기다.

화장기 없는 얼굴, 짧은 단발머리는 하얗고 키는 150도 안 되는 단신이고 게다가 나이는 칠십 둘이시란다. 일흔두 살 저 나이에도 저렇게 예쁠 수 있구나. 감동이었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60년 동안 썼단다. 60년 동안 쓴 글을 전영애 선생님은 40년을 공부하고 나서 비로소 번역을 하신다는 말씀 또 감동이다.

여백서원을 가꾸시는 전영애 선생님은 독일어 교수로 은퇴하셨다. 지금은 5인분 노예, 박수부대, 괴테 연구가 글을 쓰며 살아가시는 일상을 보여주신다.

부지런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애를 실천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글을 쓰기위해 만든 당신의 공간은 키 큰사람은 다리도 뻗지 못할 만큼 작다.

“꽃은 예쁜데 나는 웃어도 안 예뻐, 일흔둘까지 살아보니 소중한 것은 찰라 같은 시간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에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은퇴 후 여주에 자리를 잡고 여백서원을 손수 가꾸시는 전영애 선생님, 내 눈 엔 살아있는 성자시다.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은 이 시대 이 나라의 진정한 어르신으로 한번 만나보고 싶다.

여백서원은 흰빛과 같은 사람, 친정아버지의 호를 딴것이란다. 나이 듦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나이 듦이 두렵지 않겠다. 자랑스럽고 편안하고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 내게는 일흔둘의 선생님은 희망, 떨림, 감동, 존경, 위로 세상에 좋은 단어는 다 드리고 싶다. 선생님과 함께 여백서원을 거닌 듯 가슴이 뜨거워졌다. 일흔두 살 두렵지 않게 맞이해야겠다는 무엇이 뜨겁게 올라온다.

세상에는 하찮은 직업, 인생은 없다고 말한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건 그 사람이 어떤 인생관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지 싶다.

지식만 많고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그깟 지식은 한낱 도구에 불구 한 것이고 배움이 짧아 지식은 적지만 생각과 행동이 올바르면 존경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 시대의 어른은 어떠해야 하는가. 나이만 먹었지 어른으로서의 행동을 못 할 때가 많다. 누가 보아서 가 아니라 나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화물차들이 많이 다니면 운전하기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데 고속도로에 화물차들이 많이 다니면 기분이 좋다고 하시는 분이 있다. 우리나라 산업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관광차나 자가용이 많이 다니는 것보다 짐을 많이 실은 화물차가 많이 다니면 기분이 좋다고 하시던 그분을 보면서 이 나라의 주인이구나, 어르신이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

비가 내리는 아침에 여백서원에 흠뻑 젖어보았다.

전영애 선생님은 아직도 할 일이 태산 같다. 여주에 괴테마을도 조성 중이고 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별을 볼 수 있는 작은 공간, 마음이 허기진 사람들을 위해 책 오두막도 만들 것이라며 선생님은 실리를 위해 하는 일이라면 못 하실 거라 하신다.

저 사람 어디 아프겠다. 알아주는 것은 어마어마한 감쌈이다.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도 바르다. 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요즈음 3인분 노예에서 5인분 노예로 승진 했어요” 하시면서 크게 웃으시는 선생님모습에서 세상이 다 환해진 듯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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