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진 물은 주워담지 못한다
엎어진 물은 주워담지 못한다
  • 방선호 수필가
  • 승인 2023.06.28 1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방선호 수필가
방선호 수필가

‘엎어진 물은 주워담지 못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를 풀이하면 물이 엎질러졌다는 것은 호랑이에 물렸다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지 못한다는 것은 호랑이에게 물린 뒤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넌 상황에 봉착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마음이 0점 조정되면 물이 엎질러졌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어려운 일이지만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는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봄으로써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으려는 그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게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비를 맞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다. 비를 조금 맞았을 땐 덜 젖으려고 달리거나 비 피할 곳을 차게 되지만 흠뻑 비를 맞으면 비 피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포기하고 비를 맞는 쪽을 선택한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으려는 욕심을 일으키지 않는 까닭에 물은 엎지른 것은 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더는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게 되고, 물이 엎질러지고 주워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참으로 물을 엎지르고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면 즉시 새로운 물을 담아 새로운 인연으로 시작한다.
결국 물이 엎질러졌고 그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마음을 0점 조정해보라. 이는 물이 엎질러진 사실과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과 집착을 내려놓는 일일 뿐이다.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정견(正見)이 가능하다면 아쉬움과 집착을 내려놓고 말고 할 것조차 없다. 바다에 빠진 사람이 죽음의 공포에 떨며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보다는 온몸에 힘을 빼고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음으로써 익사하지 않고 물에 둥둥 뜨며 살아나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크게 죽음으로써 크게 살아난다는 선가(禪家)의 가르침이 있다. 엎지른 물을 주워담지 못한다는 속담이 전하고자 하는 의지와 전혀 다르지 않다. 물이 엎질러졌다는 사실과 주워담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과 집착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마음을 0점 조정하는 것이 크게 죽는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크게 죽었다면 새로운 물을 그릇에 담는 새로운 인연이 꽃피어남으로써 크게 살아날 수밖에 없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즉,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전을 꾀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생장소멸하고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지속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