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고 개교, 개문발차 되지 말아야
단재고 개교, 개문발차 되지 말아야
  • 지성훈 청주고 교장
  • 승인 2023.06.2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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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지성훈 청주고 교장
지성훈 청주고 교장

 

침묵은 금이라 했던가? 하지만 침묵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자기 의견을 표현하거나 자신을 말해야 할 때는 침묵보다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특히 떼법을 내세운 논리 앞에서는 침묵이 금이 아니다.

최근 단재고의 내년 3월 정상개교를 촉구하는 단체는 “단재고의 교육 목표와 교육과정은 대안교육 관련 교사들이 5년간 진행한 값진 연구 결과”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단재고는 국어와 사회 등 필수 과목을 이수하면서 철학과 언론학 등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킨 6학급 96명의 미래형 대안학교로 아이, 학부모, 교사들이 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살펴본 `96명 학생에 96개 교육과정'이라는 5년간 혈세의 결과는 놀라웠다. 2022년 12월 제시된 단재고 교육과정을 보니 학생들이 3개년 간 총 이수해야 할 178학점 중 그들이 필수과목이라 하는 보통교과(국어, 사회, 한국사)는 12학점 뿐이고 단재 정신을 앞세운 철학, 언론학, 인문학도 12학점이다. 나머지는 노작, 프로젝트, 인턴십, 자기설계, 자치, 이동학습, 아웃도어 등이다. 이는 같은 대안학교인 은여울고 24학점, 1년 과정인 목도나루학교 16학점과 비교해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이다. 게다가 운동을 하는 학생선수들도 수업결손을 보충하고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생 선수 최저 학력제 도입으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게 하고 있는데 5년간 값진 연구의 결과라는 주장이 참으로 무색하다.

학교는 교사가 일정 발달 수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교육 내용을 계획·조직적으로 교육하는 교육기관이다. 아울러 초중등교육은 법률이 정한 국가교육과정을 따라야 하고 교사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만이 교사가 되어 교육을 수행한다. 이 같은 학교 교육에 대한 국가사회적 통제는 교육이 국민의 복지에 미치는 공공성에 기인한다.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칠까를 결정하는 교육과정은 중요하다. 그러니 교육의 세 구성요소 중 하나인 교육과정이 부실한 것을 알면서도 개교를 강행하라는 것은 브레이크도, 출입문도 없는 개발 중인 시내버스, 지하철의 개문발차와 폭주를 허용하라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입시위주 교육제도, 학벌중심 사회풍토, 사교육 의존도 증가, 청소년비행, 학교붕괴 등 다양한 이유로 공교육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고민과 대안도 지속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우리는 가끔 공교육 체제에 적응하지 못해 중도탈락을 선택한 학생, 성적과 입시의 압박 속에 고귀한 생명을 내던진 학생, 집단따돌림과 학교폭력 등으로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의 소식을 접한다. 학교교육이 형식교육에 매몰되어 현실과 떨어진 죽은 교육, 입시위주 경쟁교육으로 흐른 탓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뉴스 소식들은 단지 학생들만의 문제 또는 교육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대안학교는 학업을 중단하거나 개인적 특성에 맞는 교육을 받으려는 학생을 대상으로 현장 실습 등 체험 위주의 교육, 인성 위주의 교육 또는 개인의 소질·적성 개발 위주의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하는 학교이다. 제도권 밖에서 이뤄지는 단순한 실험교육, 홈스쿨링이 아니다. 그렇기에 촘촘한 교육과정과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최근 뜨고 있는 챗GPT와 같은 오픈AI 지식 기반 사회에서의 교육 패러다임 변화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입시위주, 학력중심, 경쟁교육으로만 몰고 가서는 안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더 나은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제대로 된 틀 안에서 대안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충북교육의 품 안에서 단재고의 순항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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