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족보
묘한 족보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3.06.2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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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주말 아침, TV나 볼까 싶어 소파에 앉는다. 어느 결에 다가왔는지 밍이가 냉큼 무릎 위로 올라앉는다. 7년 전 아들 덕분에 느닷없이 생긴 늦둥이 딸아이다.

아들은 입학한 그해 봄부터 수상한 기미가 있었다. 주말이면 꼬박꼬박 오던 녀석이 과제 따위의 핑계를 대며 건너뛰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는 새내기 대학 생활이 바쁜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대형사고를 치느라 그런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기말고사 마지막 날 아침, 결국 아들은 전화상으로 아이의 존재를 고백해 왔다. 여름방학을 맞아 내가 짐을 가지러 원룸으로 가기로 한 날이었다. 오전 내 마음속 태풍이 소용돌이쳤지만 어쨌거나 아들을 데리러 가야 했다. 심란해서 운전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원룸에 도착하자 나보다 더 불안해 보이는 작은 눈빛 하나가 가슴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그렇게 아이를 만났다.

“밍아, 인사해. 할머니야.” 제 아빠 뒤로 숨기만 해서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상견례를 마치고 일단 싸놓은 짐을 날랐다. 트렁크며 뒷좌석까지 실어 놓고 보니, 있어야 할 교재 한 권이 없고 거지반 아이 물건이었다. 인내심을 발휘하며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가뜩이나 좁고 정리를 하지 못해 어수선한 아들 방에 애 물건까지 들여놓으니 말 그대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 와중에 아들이란 녀석은 어미 속이야 타들어 가든 말든 온통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된 제 새끼만 보이는 듯싶었다.

한동안 아들 방을 벗어나지 않던 아이가 며칠 지나니 차츰 거실과 부엌으로 조금씩 나왔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정을 살피고, TV를 보고 있으면 슬쩍 스치며 지나가기도 했다. 어린것이 애쓰는 게 안 돼 보여 나도 점점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아이는 자기 살 궁리를 하는 건지 귀찮게 하거나 떼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듯 우수에 젖어 베란다 창밖을 내다볼 때면, 그 말간 눈빛에 빨려들어 영락없이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그 눈은 내게도 계속 꿈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시나브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한 아이를 보더니, 아들은 처음엔 잠깐도 못 하던 외출을 슬금슬금 늘려갔다. 방학이 끝나 갈 즈음엔 급기야 친구들과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오겠단다. 은근슬쩍 족보까지 바꿔버렸다. “밍아, 오빠 갔다 올 때까지 엄마 말 잘 듣고 있어!” 그때부터 육아는 완전히 내 몫이 되었고, 어이없게도 나는 쉰둥이 딸을 얻게 되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항상 반갑게 맞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밍이가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 나와 반겨준다. 자기 덕에 딸 하나 얻었으니 자칭 효자라는 아들의 말을 요즘은 부정하지 않는다. 확실히 많은 사람이 동물을 또 다른 형태의 가족으로 여기는 것 같다. 미국의 어떤 부동산 재벌은 키우던 개에게 자식들에게보다 더 많은 유산을 남겨줬다지 않는가.

깊이 교감을 나누는 가족이라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고민은 꼭 필요할 것 같다. 간간이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처럼, 좋아서 키우다가 귀찮아지면 버리거나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없이 동물을 학대하는 일은 단연코 없어야 할 것이다. 끝까지 보살피고 사랑하며 책임지는 것이 가족이니까.

밍이가 눈 키스를 보내온다. 손녀딸이든 늦둥이 딸이든 족보야 무슨 상관이랴. 오로지 사랑하며 살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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