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팔자인 것을
내 팔자인 것을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6.2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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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손님이 온다고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어질러져 있던 집안을 마음에 들게 치우고 나면 이미 한 나절이 지나고 부실한 체력은 바닥이 난다. 그런 상태로 음식을 만드니 나물은 너무 삶아지고, 겉절이는 짜고, 고기에서는 누린내 나기가 십상이다. 음식솜씨가 없는 편이라 식사시간에도 손님이 음식을 잘 먹는지 살피기에 바쁘다. 반가운 손님을 맞으면서도 그들의 시선에 내가 어찌 보일까를 염려하느라 나 자신을 들들 볶고 있는 것이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혀를 찬다. 손님이 우리 집에 감사를 나온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냐는 것이다.

자동차부품회사에서 다니던 때 입안에 하얀 막 같은 상처가 생겼었다. 피곤해서 생긴 입병이려니 했는데 반년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어렵게 휴가를 내서 동네의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의사는 환자의 마음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차갑게 말했다. “입안에는 막이 생길 수 없는 거예요. 백반증입니다. 소견서 써 줄 테니 하루라도 빨리 큰 병원에 가보세요.” 상처가 오래간다고 생각은 했지만 큰 병원까지 갈 일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인터넷에 백반증을 쳐보니 흡연하지 않는 여성이 백반증에 걸렸을 경우는 구강암일 확률이 90프로가 넘는다고 했다. 그 때부터 병명도 치료법도 생경한 구강암에 대한 공포가 마음을 조여 왔다. 모든 일에 의욕이 떨어지고 입맛도 없어졌다. 급기야는 잠도 잘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예약일이 되어 대학병원에 갔더니 대학병원 의사는 누가 그런 엉터리 진단을 내렸느냐면서 잔뜩 긴장한 내 얼굴을 보고 커다랗게 웃었다. 백반증에 대한 해프닝은 그렇게 어이없이 끝났지만 그 간의 걱정이 너무 커서 나는 불안증이라는 달갑지 않은 병을 얻었다.

지나고 보니 인생의 많은 부분을 남의 눈에 맞추기 위해 나를 치장하는데 써왔다. 남들이 이렇게 생각하면 어쩌지? 저렇게 생각하면 어쩌지? 걱정이 미리 앞서 시작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한 일이 부지기수다. 생로병사가 있는 인생을 살면서, 지켜야 될 가족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생기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 조인 날들도 부지기수다.

미국 펜실바니아주립대의 탐 보르코백 연구진은 걱정거리의 79%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16%는 미리 준비하면 대처할 수 있는 걱정이라고 말한다. 지금 걱정하고 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5%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가장 후회되는 일에서도 걱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답이 나왔다. 그 나이까지 살아보니 유명 대학의 연구진이 내 놓은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해온 걱정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걱정해도 소용없는 걱정과 걱정거리도 아닌 걱정을 하며 사느라 행복해도 될 날들을 놓쳐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6월 중순인데 벌써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곳곳에서 폭염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속도가 붙은 지구 온난화의 기세가 무섭기만 하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 많은 세상에 점점 병증을 드러내고 있는 지구까지 우리가 크고 작은 걱정으로부터 놓여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미국 유명대학 연구진의 연구결과를 입으로 뇌며 나의 오늘을 평온히 보내고자 한다. “지금 걱정하고 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5% 밖에 되지 않는다.” 설령 그 5%안에 들어간다고 한들 어찌하겠는가? 그 또한 내 팔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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