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그림자
꽃 그림자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06.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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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가을 낙엽이나 겨울 눈은 빗자루로 쓸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쓸어 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림자가 그것이다.

그림자 중에도 꽃 그림자는 쓸리지도 않을뿐더러 향기마저 배어 있다.

그러니 풍류객이라면 그것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 내지 못할 것이다.

송(宋)의 시인 소식(蘇軾) 같은 대풍류객이 이를 마다할 리가 없다.


꽃 그림자(花影)

重重疊疊上瑤坮(중중첩첩상요대) 꽃 그림자 층층이 요대 위에 쌓였는데
幾度呼童掃不開(기도호동소불개) 아이 불러 몇 번이나 쓸어도 쓸리질 않네
剛被太陽收拾去(강피태양수습거) 해가 그것을 데리고 가면 지워지겠지만
卻敎明月送將來(각교명월송장래) 또 다시 밝은 달이 그림자를 가지고 오겠지.

요대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누대이다.

그렇다고 그림자가 지는 것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면 지체 높은 주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그것을 쓸어 내게 해 보았지만, 그것이 쓸려나갈 리 없다.

시인은 꽃 그림자가 쓸려 없어지지 않는 것을 통해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을 것이다.

시인이 밝히지 않는 한, 짐작이 될 수밖에 없지만, 시인이 그림자가 빗자루에 쓸리지 않는 것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불러 그것을 왜 쓸도록 했을까?

아마도 꽃이 오래도록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서였을 것이다.

해가 지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달이 또 있기 때문이다.

달빛에도 그림자는 얼마든지 드리우니까 말이다.

꽃 그림자는 결국 꽃이 져야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꽃이 지는 것은 시간이 흘러갔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같은 시간이라도 자신이 아끼는 것이 사라지는 것을 통해 그 흐름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마련이다.

꽃 그림자를 쓸어 내면 혹시 꽃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꽃이 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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