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 2
예초기 2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3.06.2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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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내가 다니는 백곡 성당은 잔디밭이 많아서 몇 번씩 제초 작업을 한다.

처음에는 남들이 깎은 잔디를 모아 치우고 뒤에서 돕는 심부름을 하였다.

예초기의 달인인 평협 회장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총무는 하지마, 위험해”하시며 예초기 작업을 만류하셨다.

집에서 1년 넘게 예초기 작업을 하였다. 무엇이든지 하면 는다고 이 일도 하다 보니 솜씨가 는다.

시동도 잘 걸고, 날고 잘 갈고, 자세도 잘 잡고, 제법 여유 있게 작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하는 방식으로 풀도 잘 깎게 되니 자신감이 생겼다.

성당 제초 작업하는 날 드디어 예초기를 메고 갔다. 성당 어르신들이 모두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한번 해봐” 회장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자신 있게 시동을 걸고 예초기를 들었다.

둥근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예초기 날로 잔디를 시원하고 깨끗하게 깎았다.

“아이고 이제는 잘하네, 성당 뒤편을 맡아서 해.” 회장님의 시험에 통과한 것이다. 이후부터 성당 제초 작업팀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

예초기에는 날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쇠로 만든 날이고, 다른 하나는 끈으로 된 날이다.

처음에는 쇠로 된 날을 사용하였다. 예리한 날이라 풀이나 작은 나무도 잘 자른다. 하지만 돌 틈이나 벽 등 장애물이 있는 곳에는 사용이 어렵다.

쇠와 돌이 부딪치면 날도 무뎌지고 자칫하면 날이 부러지거나 빠져서 다칠 염려가 많다.

이때에는 줄로 교환해야 한다. 줄로 된 날은 쇠 날 보다는 잘 깎이지 않지만 좀 더 안전한 작업이 가능하다.

장애물이 많거나 땅바닥의 작은 풀들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

쇠 날과 줄 날을 용도에 맞게 사용하게 된 시골살이 5년 차의 마당 정원 예원은 덕분에 더 깨끗해졌다. 풀이 조금만 올라와도 바로바로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당 정원 예원에 있는 여러 기계 중에 예초기는 가장 가성비가 좋고 자주 사용한다. 시골살이에 꼭 있어야 하는 연장이다.

`마당정원 예원' 앞에는 농사를 짓지 않는 밭이 있다.

여기서 자란 풀들이 씨를 날려 보낸다.

아무리 예초기를 돌려도, 밭의 풀을 깎아 주지 않으면 집안의 풀을 감당할 수 없다.

쉬고 있는 밭은 풀들의 서식처다. 올 5월 밭에서 제초 작업을 하다 풀에 둘러싸인 찔레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볼품없었는데 주변 풀을 깨끗하게 깎아 주고 나니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변신하였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아름다움이 드러나려면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마음 밭에 있는 `행복의 꽃'을 잘 피우려면 잡다한 마음의 풀들을 없애야 한다.

필요 없는 것이 사라지면 본연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정기적으로 마음 밭의 예초기를 돌려야 한다.

필요하지 않은 마음, 찌꺼기처럼 달라붙어 있는 마음, 오래되어 냄새가 나는 마음의 풀들을 모두 깎아 주어야 한다.

어쩌면 마음 밭에 있는 모든 욕망의 풀들을 깎아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도 예초기를 돌린다. 잘려 나가는 풀을 보며 내 마음 밭의 예초기도 돌린다.

예초기가 돌아가는 시간은 마음을 비우는 수행의 길이다. 버릴수록 행복해지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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