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야 보이는 것들
걸어야 보이는 것들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3.06.25 1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기분이 우울하면 지금 걸어라. 그래도 여전히 우울하면 다시 걸어라.'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이다. 우리는 균형 잡힌 걸음을 걸어야 한다. 건강한 영혼과 생각과 말과 육체를 위해서다. 나이가 들면서 다리 근육은 빠지고, 머리는 하얘지고 만다. 인간에게 노화는 숙명적이다. 그래서 노화를 늦추기 위해 걸어야 한다. 웃는 사람이고, 사랑하는 사람이고, 고마운 사람이 되려면 걸어야 한다.

세상의 이치일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계획한 일도 순조롭게 되지 않는다. 혹자는 그게 인생이란다. 오래전 보드를 타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순간 말할 수 없는 통증으로 몇 달간 고생했다. 허리를 굽힌다거나 침대에 누울 때 정말 그 고통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프다.

5월 아침에 손님이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해 팬데믹 상황까지 왔다가 가는 마당에 다 늦게 코로나에 걸렸다. 머리는 아프고 목이 칼칼하다. 오한이 있어 누워있는 것도 힘들고 근육통이 자근자근 찾아왔다. 결국, 자가격리 기간을 채워야 했고, 마당에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또다시 말도 못 할 만큼 엉치뼈에 고통을 주었다.

더욱이 오후 서너 시가 되면 허기가 지고 무기력해졌다. 그러다가 맥이 풀린 듯 멍하니 혼미해진다. 몸이 붕 떠 있는 듯 내 몸을 내가 가눌 수 없었다. 식은땀이 나고 배고파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혼자 밥 먹는 게 번거롭고 귀찮아져서 먹을 수가 없다. 모를 일이다. 새벽이 되면 잠에서 종종 깬다. 한쪽이 팔이 저려서 깨기도 하고, 침이 나오지 않아 입이 말라서 깨기도 하지만 허리가 아파서 깨기도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떨리는 손을 잡아가며 SNS를 뒤져 당뇨 자기 테스트를 한다.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생긴 것 같다. 누구나 늙어가는 것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다 힘든데, 다 참으면서 사는 거란다. 견디는 거란다. 우리 몸에 호르몬 변화의 주범인 시간 앞에서 꼼짝 못 하는 것도 순리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신체적, 정신적 쇠약해지는 자연적 현상에 순응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그보다 참기 어려운 건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니 극복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거다. 상담사의 말이다.

문득 묵직한 질문을 한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채근하듯 나의 한계를 발견한다. 어차피 걷는 일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너질 수는 없었다. 마음 근육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용기를 내야겠다. 상담사의 권유대로 소식하고, 걷는 것과 균형 있는 생활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시간이 사라지기 전에 걸어야겠다. 내 몸이 아파도 걸어야겠다. 기뻐도 걷고, 슬퍼도 걸으면서 생각하고 의식의 흐름을 놓지 않겠다. 갑자기 찾아드는 손님과 대적하려면 막힌 길도 걸어가야겠다. 내 앞을 지나면서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걸으면서 보이는 게 있다. 길이 아닌 길도 걸어가다 옛 추억을 생각하면 그땐 내가 그랬지, 먼 고향 떠올리다 보면 어머니 생각도 나겠지,

그렇다. 오류가 있던 삶도, 미안한 일들도 걸으며 생각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에 웃음이 나온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당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않으리라. 내가 할 수 있는 느림의 속도로 맞춰 걸어가자. 시간 앞에서 서두르지 말고 자신을 믿자. 새가 나뭇가지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걷자. 들어오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걷고 걸어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