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상처 세상의 모든 나무
지워지지 않는 상처 세상의 모든 나무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3.06.2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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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굉음에 톱밥이 연신 날린다. 바닥으로 떨어져야 할 톱밥이 공중으로 흩날린다. 안경 안쪽으로 넘어 드는 톱밥에 눈을 뜨질 못한다. 진작 고글을 샀으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을.

얼마간의 기계톱과 싸움 끝에 둔탁하고 강한 소리가 땅을 강타한다. 참았던 가쁜 숨이 폭발한다. 경련이 일어날 것 같던 팔뚝은 이내 후들거리고 가슴은 벌렁거린다. 오래 묵은 살구나무가 충격을 덜어 주었는데도 땅을 치는 소리가 굉장하다. 나무가 넘어지면서 주변의 나뭇가지까지 모조리 훑었다.

잘린 밑동이 말끔하다. 뽀얀 속살이 거친 나무껍질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거친 톱날이 지나가고 톱밥이 얹혀 있음에 색을 잃지 않고 있다. 자르고 얼마 안 있어 물을 머금고 있던 나무가 공기를 만나 흥건하게 적셔지는 듯하다.

육중한 무게의 나무를 들어 옮기는 건 쉽지 않다. 혼자의 힘으로 들어 옮길 만큼으로 동강을 내도 힘에 부치는 건 매한가지, 최대한 옮길 수 있도록 자르는 작업이 계속된다. 쓰러진 나무가 잘리면서 새로운 속살이 드러난다. 조그마한 상처다. 자라면서 언젠가 예기치 못한 일이 있었나 보다. 거추장스러워서 아님. 바람이 너무 세계 불어 가지가 부러졌었던 듯하다. 잘린 부분이 매끈하지 못하다. 잘려나간 부분은 거칠지만, 상처를 보듬고 자라면서 빈틈이 없이 깔끔하게 메꿔져 있다. 검은 퉤퉤 한 잘려나간 부분을 뽀얀 속살이 덮어 주었다. 몰랐다. 자르기 전에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를.

둥근 부분을 켜는 일을 시작한다. 원목을 각지게 만들어 이것저것 올려놓기도 하고 스툴을 만들기 위해서 기계톱을 든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톱밥이 날린다. 물기가 없어서 그런지 톱날이 나무를 제압하는 데 제법 힘이 드는 모양이다. 톱밥은 마른 먼지가 되어 공기 중에서 부유한다. 처음에 켜는 선을 따라 금긋기를 하듯 지나고, 조금씩 힘을 주어 반복해서 자리를 지난다. 기계에서 보이는 톱날은 점점 나무속으로 파고든다. 지났던 자리를 벗어나면 안 되는 일이기에 집중도가 상당히 필요시되는 작업이다. 반복에 반복이다.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을 때 힘을 주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수피가 붙은 둥근 부분이 옆으로 툭 하니 떨어진다. 드디어 해냈구나! 다른 면을 켜기 위해 나무를 돌려 누인다. 잘랐을 때 보였던 상처가 제법 길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뽀얀 속살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수피보다도 더 검게 변해버린 까맣게 타들어 간 색이다. 행여 불이 났던 것인가? 잘린 곳에서 보였던 상처를 아물게 한 흔적을 이곳에서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때는 그랬지만 스스로 아물게 하는 시간이 빈틈없이 메꿔주었다. 겉에서는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말이다. 몰랐다. 켜기 전에 힘든 일이 그렇게 오래되었고 고통스러웠는지를.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서 온갖 일이 있었던 듯싶다. 잘리고 부러지고, 꺾이고 불에 타면서도 자라야 하는 에너지를 잃지 않았다. 꽃을 피우는 사치보다는 더 강한 싹을 틔우는 에너지를 만들고 저장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때를 만나 몸집을 키워나갔다. 상처는 스스로 아물게 하는 것이고, 덮어 주고 자라는 것에 멈춤이 없었다. 상처는 시간이 치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치밀하게 메꿔주는 에너지를 만들어가는 것을 시간의 나무는 알고 실천했다. 예기치 못한 일을 극복하고,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말끔하게 자르고 켠 나무에 거친 사포에서 고운 사포로 어루만지듯 공을 들였다. 이젠 물기 하나 없는 생명을 다한 나무가 되었다. 장갑을 벗고 손바닥으로 나무를 보듬듯이 어루만진다. 매끈하고 단단하다. 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기름을 조금씩 먹인다. 나뭇결이 살아난다. 상처도 더욱 명확히 살아난다. 숨기고자 했던 상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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