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진짜와 가짜
  •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 승인 2023.06.20 1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터미널은 붐볐다. 모두 서둘러 걷고 있다. 시간을 보니 목적지까지 시간이 빠듯하다. 나도 덩달아서 서두르며 곡예를 하듯 사람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건물의 모퉁이를 지나다 깜짝 놀라서 멈칫했다. 오른쪽에 있는 벽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어 이게 웬일이지, 큰일 났구나!' 하는데 무너진 벽면의 뒤에서 형형색색의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짧은 시간 동안 놀람과 반전이 교차하면서 선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상품의 존재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순간 `속았구나' 하면서 `와! 기막힌 홍보네'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벽이 아닌 영상물이었던 거다.

뜻밖의 반전에 마음 설레며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로비는 인파로 붐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한쪽 벽면에는 수생식물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다. 바람도 햇살도 없는 실내에서 철 지난 동백꽃이 피고 수직 정원에는 식물이 액자의 그림처럼 자라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욱 생생하다. 생화인지 가만히 손을 대 보았다. 그래도 잘 구분이 되지 않아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본다. 하나는 조화고 하나는 생화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일이다. 어떤게 진짜고 가짜인지 구별하기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 인간의 감각기관인 눈과 귀, 코는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차라리 오감을 가지고 식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관념과 의식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건 더욱 어렵다. 가짜 뉴스다, 떴다 방이다, 짝퉁이다, 세상이 온통 가짜로 채워진 듯싶다.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이 선량(選良)이라고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다. 전시장이나 경매장에서는 진품이요, 명품이라고 하지만 훗날 가짜로 밝혀지기도 한다. 진짜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달리 생각해 보면 애당초 진짜와 가짜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터미널에서 보았던 영상물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원래의 용도는 지붕을 받쳐주든지, 공간을 구분하는 칸막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벽면을 이용해서 상품을 홍보하는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다. 현재의 용도로 본다면 홍보영상 또한 벽면의 실제 용도가 될 수 있다.

백화점의 장식품인 동백꽃이나 액자 식물도 실내공간을 화사하게 해주고, 고객들에게 맑은 공기를 공급해 주고 있다. 조화는 조화대로, 생화는 생화대로 그들의 역할을 하고 있다.

거리를 걷다가 작은 공원에 들어섰다. 공원 입구에는 사람 키만 한 거울이 몇 개 세워져 있다. 공원에 웬 거울을 세워 두었을까? 궁금해하며 거울 앞에 섰다. 첫 번째 거울 앞에 서니 내 모습이 옆으로 넓게 퍼졌다. 키가 작아 보이고 뚱뚱해 보인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난쟁이족 같다. 다음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키가 크고 홀쭉한 내가 있다. 서커스단에 나오는 키다리 아저씨 같다. 그리고 다음 거울 앞에 서니 울퉁불퉁하게 보인다.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인지 헷갈린다.

진짜 안에 가짜가 있고, 가짜인 듯싶지만 진짜가 있다. 내 마음속에도 늘 진실과 거짓이 공존한다. 진실을 말할 때는 진실이 진짜이고, 거짓을 말할 때는 거짓이 진짜다. 과거의 나도 있고 현재의 나도 있다. 미래의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만이 진정한 나이지 싶다. 지금 존재하는 것이 진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