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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3.06.19 1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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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환자들을 살리려고 저승사자와 싸우던 분.

의료계의 큰 별이 졌다.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주석중 교수. 향년 62세인 그는 지난 16일 자신의 근무지인 병원 앞 아파트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우회전 하던 트럭에 치여 안타깝게 삶을 마감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의료계는 물론 그로 인해 생명을 구한 수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이 애도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에 올려진 댓글에서 한 누리꾼은 주 교수에 대해 `환자들을 위해 저승사자와 멱살잡고 싸우시던 분'이라고 표현했다.

환자 가족이라고 밝힌 다른 누리꾼은 “아버지의 목숨을 세번이나 살려주신 분”이라며 “바쁜 일정에도 불구 새벽 시간이나 낮에 수시로 병상을 찾아 환자를 살피셨다”고 밝혔다. 또 다른 누리꾼은 `교수님은 크리스마스에도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대기할 정도로 열정적인 의사였다. 허망하게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깝다'고 글을 올렸다.

“대체 불가한 의사 중의 의사.”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이 주 교수를 이렇게 표현하며 다음과 같은 애도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주 교수는 국내 대동맥수술의 수준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탁월하고 훌륭한'이라는 단어로도 표현해낼 수 없는 인재 중의 인재”라며 “이런 인재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이 인재의 부재로 인해 누군가는 살아날 수 있는 소생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유능한 의사의 비극은 한 사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늘의 뜻이겠지만 인간의 마음으로는 너무나 슬픈 일이다.”

`의술만큼 인성도 감히 따라잡을 수 없이 훌륭했던 교수님.' 제자들 역시 주 교수의 서거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애도의 글을 이어가고 있다.

주 교수는 사고를 당하기 직전에도 새벽에 환자를 살리려고 밤샘 응급수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수술 후 잠깐 쉬는 틈을 타 10분 거리의 집에 가서 쪽잠을 자고 다시 병원에 출근하다 사고를 당했다.

그는 집에서 과로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환자 상태가 좋아져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게 그가 유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6만3000회. 그가 생전에 흉부외과에서 집도한 수술 횟수다. 30년을 근무했다고 치면 연간 2100회, 하루 평균 5.8회씩 쉬지 않고 수술을 하며 환자들을 돌봤다.

그가 병원 코앞 10분 거리에 집을 마련하고 살아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환자만을 보고 살아왔던 그에게 집은 병원과 가장 가까워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크리스마스나 명절 새벽에도 병원에서 숙식하며 대기할 정도로 환자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다.

47.9%. 2022년 대한민국 대학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충원율이다. 절반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대표적인 비인기 기피 과(科)다. 수시로 응급 환자의 가슴을 열어 재끼고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면서 고난도의 수술을 해야 하는 전공의인 탓에 의사 지망생들이 가장 꺼린다.

환자들의 골든타임을 지켜주려고 병원을 내 집 앞마당 거리에 두고, 환자들을 데려가려고 수술방에 쳐들어온 저승사자들의 멱살을 부여잡고 싸우던 주석중 교수. 그래서 그의 죽음이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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