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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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3.06.1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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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를 다녀왔다. 청령포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유배되었던 애절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섬과 같은 곳이다.

단종의 유배지를 표시한 영조의 친필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비가 있다. 비(碑)의 뒷면에는 1763년 9월에 원주 감영으로 하여금 비를 세우게 했다는 내용과 청령포라는 지명이 음각되어 있다.

부슬비가 그치자 푸른 기골 장대한 소나무 숲에 바람이 지나간다. 단종어소 담 밖 `엄홍도 소나무'가 어소를 향해 읍을 하듯 고개 숙이고 있다. 엄홍도는 밤이면 남몰래 이곳을 찾아와 단종에게 문안을 드렸다 한다. 단종어소에는 단종과 단종을 알현하는 선비의 모습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돼 있다. 행량채에 궁녀와 관노의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단종은 청령포에서 두 달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단종어소를 휘감아 하늘로 오르는 운무의 몸짓이 신비롭다. 단종의 넋을 달래듯 살풀이춤을 추는 운무를 헤집고 관음송을 향해 갔다.

단종은 관음송의 갈라진 나무 사이에 앉아 시름을 달랬다 하니 600여 년의 세월을 견딘 관음송의 생명력이 놀랍다. 이 소나무를 관음송이라고 부른 것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 하여 볼 관(觀)자를,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여 소리 음(音)자를 써서 관음송이라고 전한단다.

본 것이 잘못이었거나 들은 것이 죄이었을까마는 관음송은 죄인인 듯 말없이 노산대를 바라보고 있다. 어린 왕의 애달픈 역사를 보고 들어 관음송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 있으니 행운의 노송이다. 장구한 세월을 버틴 상처투성이 관음송의 역사적 가치를 가늠해 본다.

단종이 시름에 잠겨 서성였다는 노산대에서 강을 내려다본다. 강은 운무에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강바람에 쫓겨가는 운무 사이로 노산대를 휘돌아 가는 강이 통곡한다. 슬픔과 그리움의 눈물로 몸부림치는 강물 위로 단종의 비통한 모습이 떠간다.

마음을 추스르고 망향탑을 향해 갔다. 노산대와 서쪽 절벽인 육육봉 사이에 있는 돌탑이 망향탑이다. 단종의 순애보가 돌무더기에 앉아 있다. 두 달 동안 쌓았기에 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고 아담한 돌무더기다.

아내 정순왕후를 그리며 쌓았을 돌탑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리움에 하나하나 돌을 얹어 남긴 망향탑은 시대의 아픔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란다.

전망대를 내려와 나루터로 향하는 길 금표비(禁標碑)가 있다. 앞면에 청령포 금표라 쓰여 있다. 청령포에 일반 백성들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금표비를 세운 목적이 무색하리만치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가 관광지가 되어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단종의 비운의 흔적을 둘러보고 나룻배에 승선하였다. 서강의 나룻배는 600여 년 긴 역사의 한을 2분여 짧은 시간에 나르고 있었다.

선착장에 내려 청령포를 바라보며 왕방연이 지은 시조를 읊조렸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무심히 흐르는 서강이 무상(無常)한 인생길 물 흐르듯 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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