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복례(克己復禮)
극기복례(克己復禮)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3.06.1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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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동양 수천 년의 지혜를 함축하고 있는 유교(儒敎)의 궁극은 군자(君子)가 되어 대동 사회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군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첫 관문이 있는데, 바로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다. 극기복례는 안연이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면서 유교의 핵심 가르침이 되었다.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 직역하면,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의미로, 유교의 궁극인 군자가 되기 위한 실제적 수행법을 명시하는 가르침으로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는 극기복례를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자면, 태양을 가리고 있는 구름이 잘못된 습관에 물든 나인 `기(己)'고 그 구름을 걷어내는 것이 나를 이기고 거듭나는 극기(克己)며, 구름이 걷힘으로써 태양이 환하게 드러나는 것이 곧 복례(復禮)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핵심 경전인 사서 중 하나인 대학은 우리 내면의 밝은 덕인 명덕을 밝히는 명명덕(明明德)을 강조하는데, 구름을 걷어내는 극기가 명(明)이고 구름을 걷어냄으로써 환한 태양이 드러나는 복례가 바로 명명덕(明明德)의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업식의 `나'를 이기는 것이 극기(克己)고, 복례(復禮)는 무아(無我)를 깨닫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는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매 순간 자신을 부인하며 제 안의 주견을 비워내는 것이 극기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서 성령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 복례다.

예(禮)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렇게 저렇게 지켜야 하는 정형화된 형식적 틀이 아니다. 하늘이 명한 내면의 밝은 성품인 명덕(明德)이, 처한 상황 상황에 맞게 발현되는 것이 예다. 달리 표현하자면, 희로애락에 물들지 않은 중(中)의 마음이 발현됨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지나침과 모자람 없이 법도에 딱 딱 들어맞는 것이 바로 예(禮)다.

그리고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 즉,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이,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수행법이다. 그런데 업식(業識)의 `나'가 오랜 세월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던 습관을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과거의 그릇된 습관들을 기억하고 있는 머릿속 기억 뭉치인 업식을 녹이고 갓난아기 같은 순수의식을 회복하는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업식을 녹여 무아(無我)를 깨닫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는 수행의 요체는, 업식에서 일어나는 습관적인 생각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챙기는 것이다. 중용은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부도) 恐懼乎其所不聞(공구호기소불문)” 즉, 보이지 않는 바를 경계하고 조심하며, 들리지 않는 바를 두려워하라고 강조하는데, 그릇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 보이고 들리기 전의 머릿속 그릇된 생각들을 하나도 놓침 없이 알아차리라는 가르침이다. 그릇된 생각에 습관적으로 끌려가던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극기복례여! 극기복례에 따른 당당하고 아름다운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의 멋진 삶이여! 다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상생하는 행복한 대동세계(大同世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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