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태어나는 겁니까
사람은 왜 태어나는 겁니까
  •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 승인 2023.06.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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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사람은 왜 태어나는 겁니까?

심오할 리도 없는 질문에 가히 심오할 수도 있는 답. “나도 모른다.”

극락보전과 대웅전 사이로 난 돌계단 올라 산신각에 삼배 올리고 뒤돌아 앉는다. 탁 트인 시야가 좋다. 좌청룡도 좋지만 우백호가 좋은 터다. 깊은 골 깊은 산에 자리한 터는 아니어서 산 맛이 깊지는 않지만 이 절집은 산신각(山神閣) 뷰 맛집이다. 작년 수국이 한창일 때 다년 온 세종 전의에 있는 비암사(碑巖寺)이야기다. 주지스님과 이때 오간 문답이다.

스님과 차 소반 사이에 놓고 차 받으며 오간 것도 아니고 요사채 뒷마당 새끼 강아지 보며 나눈 이야기라 더 심오하다.

“전생에는 절집 문턱도 안 넘은 놈이지.”

강아지 쓰다듬으며 어떤 질문이라도 던져보라는 듯 흘리시는 혼잣말에 질문을 던진다. “전생이 정말 있을까요? 스님”

기다리신 듯 답하신다. “있지. 있어야지”

지난 날 스스로 혼란한 시기가 있었다. 앞을 봐도 산이었고 옆을 봐도 산이었고 뒤를 봐도 산 인 것처럼 사방팔방 꽉 막힌 듯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둘 중 하나 고르라면 바다 보다는 그래도 산이 좋은 시절이었다. 그 시절 찾아다닌 명산(名山) 입구마다 절집이 있었다. 이렇다 할 신앙도 믿음도 없었고 대놓고 종교라 내세울 것도 없던 필자에게 절집은 산길 오갈 때나 잠시 들르는 그런 곳이었다. 감로수(甘露水) 한 사발 얻어 마시려는 본연의 목적 이외에도 절 마당 구석 어디든 그냥 앉아만 있어도 찾아오는 일종의 편안함이 좋기는 했다. 그렇다고 법당에 들어가 불상 앞에 머리 조아리고 절 한번 해보려는 마음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욕심보다는 의심이 많았고 희망 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삶이라 느끼던 시절이니 내 눈에 모든 종교는 다 허무였고 허상이었다. 불교라고 다를 리 없었다. 현실이 현생이 힘들어 죽겠는데 사후(死後)가 내생(來生)이 무슨 의미이고 무슨 소용이랴.

그이후로도 산길 오다가다 들른 절집 법당에서 향 사르고 머리 조아려 절하시는 노보살님들 뒷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 오다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 불교 그게 뭔지 알고나 보자. 그래서 그때부터 읽기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애독중인 장르 중 하나가 불교관련 서적이다.

그러고는 얼마 후 필자는 참회진언 외고 팔뚝에 연비(燃臂)하고 수계(受戒)를 받았다. 불교를 종교로 삼았다. 필자를 그곳으로 이끈 것은 그 당시 읽었던 책의 한 대목이다.

부처님은 아라한들에게 부처님의 손톱과 머리털을 주시면서 계빈국 남쪽 산에 가서 절을 짓고 탑을 세우라 이르셨다. 그런데 그 산에는 500마리의 원숭이들도 살고 있었다. 원숭이들은 탑을 돌며 수행하는 스님들의 행동이 처음에는 신기한 듯 구경하더니 그 일이 재밌게 보였는지 나중에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돌과 흙을 주워 다가 탑을 만들고 스님들과 똑같이 아침저녁으로 두 손 모아 탑을 돌았다. 그러던 어느 해에 큰 홍수가 일어났는데 미처 피하지 못한 5백 마리의 원숭이들 모두 홍수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 원숭이들은 죽어서 불교에서는 천국과도 같은 도리천( 利天)에 태어났다. 이 이야기가 실린 `법구비구경'에서는 원숭이들이 도리천에 갈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물며 장난삼아 흉내 내며 탑을 세우고도 이런 복을 받는데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받들고 따른다면 그 공덕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 것인가.”

뒷마당 강아지 등 쓰다듬으며 스님께 물었다.

“스님. 사람은 왜 태어나는 겁니까?

“나도 모른다. 나도 그걸 몰라서 중질하고 있다.”

팔뚝에 향 태우던 날 다짐했다.

그래 이번 생 속더라도 부처님께 속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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