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도 음악이다
쉼표도 음악이다
  •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 승인 2023.06.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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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교정은 벚꽃이 진 자리에 어느새 새까만 버찌들로 가득하다. 수타리봉에서 울던 뻐꾸기의 울음소리도 이젠 뜸해졌다. C동 연습실 문을 나서면 커다란 미루나무들이 울타리에서 짙푸른 초록빛 나뭇잎을 흔들어대며 바람 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제 곧 그 바람 소리에 매미들이 장단을 맞출 것이다.

1학기를 마무리하는 공연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자작곡으로 무대에 섰다. 설거지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려 핸드폰을 찾으러 온 집안을 다 헤매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찾아냈다는 웃기고도 아련한 어머니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작곡한 곡이다.

곡이야 어떻든 환갑을 훨씬 넘긴 아들이 당신의 얘기로 곡을 썼다니 좋아라 하신다. “내 얘기가 노래가 되었어?”하시며 어린아이가 되셨다. “우리 어머니가 주머니 속의 전화기를 못 찾아서 온 집안을 다 뒤졌다고 광고하는 노래인데 부끄럽지 않으시겠어요?”하였더니 찾아냈으면 됐지 뭐가 부끄러우냐며 당신은 아들이 노래를 만들 수 있으면 아무래도 괜찮으니 100개라도 만들라 하신다. 그렇게 어린애처럼 좋아라 하시는 모습에 괜히 울컥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함께 공부하는 학우들이 밴드를 결성해서 반주도 해주었다. 학우들과 여러 차례 연습을 하면서 내가 지은 노래를 내가 부른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늦깎이 음대생 혹시 힘 빠질까 염려하며 성심껏 도와주려는 학우들이 고마웠고, 퇴직하면서 늦게라도 음악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던 내 자신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퇴직을 하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은 자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다는 자유!

퇴직하기 전에는 TV를 보고 있으면 졸려서 밤 10시를 넘길 수가 없었는데 엊그제는 떠오르는 곡이 있어 이리저리 구상하고 만지다 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동이 틀 때까지 곡을 써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 이 일상이 참 좋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업들이 예술이라면 예술은 확실히 자유에서 시작된다는 게 맞다. 창조는 억압된 정신으로부터 해방될 때 시작되는 법, 마음에 여백이 있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그동안 나는 어땠었나?

여백을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는 불필요한 것 정도로 치부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음표에 맞게 잘 연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쉼표에 맞게 정확히 쉬어 주어야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쉼표를 무시하면 음악의 맛이 사라진다. 곡을 써 보니, 곡의 어디에서 어떻게 쉼을 줄까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쉼표도 음악이다.

우리 인생도 그럴 것이다. 빠르게 가야 할 때는 빠른 음표를, 느리게 가야 할 때는 느린 음표를, 그리고 쉬어야 할 때는 쉼표를 적절히 넣어야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이다. 쉼표도 소중한 음악인 것처럼, 휴식도 소중한 일상이고 삶이다.

이제 다음 주 기말시험을 치르면 여름방학이다.

이렇게 늦깎이 음대생의 한 학기가 지나간다. 방학엔 뭘 하지?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올라오기에 이젠 내려놓기로 했다.

쉼표도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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