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표정의 꽃씨를 심었습니다
내 마음에 표정의 꽃씨를 심었습니다
  • 임현택 (전)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3.06.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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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전)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전)괴산문인협회 지부장

 

눈이 내린 것처럼 길섶에 꽃가루가 소복하다. 밭뙈기마다 하얗게 핀 감자꽃 그리고 산자락에 줄지어 피어난 찔레꽃과 어우러진 풍경이 시선을 빼앗는다. 햇살과 어우러져 향긋한 꽃내음을 선사하며 너울거리는 찔레꽃, 어디서 본 듯한 모양새에 꽃을 가만가만 들춰보니 하트모양처럼 생긴 꽃잎들이 쫙 펼쳐져 있다. 그 속에 다복한 꽃 수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여인처럼 우아하게 표정 짓는 모양이 튜튜발레복을 입은 발레리나의 모습과 흡사하다.

찔레꽃잎처럼 활짝 펴진 하얀 튜튜발레복을 입고 앞 발꿈치 하나로 온몸을 지탱하면서 선을 그리는 동작, 고난도 회전은 물론 현란한 춤사위로 전개되는 발레는 몽환적이다. 수많은 무용수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우아한 몸짓, 금방 날아오를 것처럼 발끝으로 지탱하고 있으면서도 밝은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그 환상적인 표정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발레의 꽃, 가장 아름다운 동작 아라베스크(Arabesque 한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다리는 뒤로 완전히 뻗어 올리는 자세로 두 팔은 손끝에서 발끝까지 가능한 가장 우아하고 긴 선을 만드는 자세)자세를 유지하면서 표정을 짓는 발레의 마지막 완성, 무용수의 표정이다. 또한 일렁이는 꽃물결처럼 발레리나들의 천금 같은 웃음을 머금고 일사불란한 군무는 가히 환상적이지 않던가.

꽃향기에 취한 듯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얼굴에 드러나는 갖가지 마음속의 심리와 감정의 모습을 담는 것이 천태만상의 표정이다. 때문에 어떤 이는 무릇 사람은 배우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표정관리를 잘해야 사회적으로 성공한단다. 아무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은 성격이 무뚝뚝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때문에 자칫 화난 사람으로 오해를 사거나 선뜻 다가가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승부를 겨루는 운동선수들의 표정엔 미소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무용수들은 표정으로 춤을 완성한다. 그렇게 발레리나처럼 우아한 자태로 하늘을 향해 화사하게 미소를 짓는 찔레꽃, 자신을 지키려는 듯 온몸에 가시를 달고 순수하면서도 곱고 온화한 청초함을 꿋꿋하게 지킨다. 마치 그윽한 향기를 품은 찔레꽃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발레리나의 기품처럼 닮았다. 한참을 서서 손끝 발끝 동작으로 가냘프면서도 강한 꽃잎처럼 생동감 넘치는 발레 춤사위를 상상하며 찔레꽃을 어루만졌다. 안온하다.

그날, 호두까기인형 발레 동영상을 보면서 무용수들의 오묘하면서도 화사한 표정에 매료되어 보고 또 보았다. 거울 속에 내 얼굴을 찬찬히 훑어본다. 설핏 보이는 미간의 희미한 두 줄의 주름, 뿐인가 눈가에 자글거리는 잔주름 그간 인상을 쓰고 다닌 흔적이 역력하다. 공자께서 얼굴을 가꾸어라 `나이 사십이 되어서도 남의 미움을 받으면 그는 마지막이다.'라고`마흔을 넘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링컨대통령도 말씀하셨다. 화장으로 가리려 덧칠하면 할수록 화장은 점점 두터워지고 주름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걸 보면 삶에 따라 표정도 달라지는 것이 자명하지 않던가.

봄이 한창인데 나의 얼굴은 아직도 겨울에 머무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삶은 생각하는 데로 흘러간다. 수줍게 봄을 알리는 찔레꽃, 넋을 잃고 아름다운 미소를 선사하는 봄 풍경 한 모금을 마신다. 그리고 내 마음에 향기 가득한 표정의 꽃씨 하나를 심었다. 그윽한 향기가 묻어나는 표정의 꽃을.

그리고 나는 연습 중이다. 발레의 완성이 표정인 것처럼 화사한 찔레꽃처럼 밝은 미소의 내 모습을 기대하면서 거울 앞에서 난 웃고 또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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