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 1
예초기 1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 소장
  • 승인 2023.06.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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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시골 생활은 연장빨이야.”

정말 명언이다. 시골살이에 가장 공감되는 말이다. 고향으로 이사하고 살펴보니 아버지가 쓰시던 물건들이 참 많았다. 호미, 낫, 톱, 삽, 괭이, 도끼, 망치, 손수레 등 종류만도 수십 종이었다.

농사지을 것도 아닌데 이런 것이 모두 필요할까? 고물상에 팔아 버리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고에 넣어 놓았다.

시골살이 첫해는 아버지 연장의 소중함을 체험하는 해였다.

연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시골살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풀이다. 조금만 게으름 피우면 장소와 시간을 따지지 않고 머리를 내민다. 이놈들을 뽑으려면 엉빵을 깔고 호미를 들고 전쟁해야 한다.

급한 일을 하다 며칠 후에 와 보면 잡초가 무성한 숲으로 변해있다. 호미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이웃집 청암이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예초기를 메고 왔다. 예초기는 참으로 신통방통한 녀석이다. 끈을 당겨 시동을 거니 웽~ 하며 칼날이 돌아간다. 예초기가 지나가면 풀들은 모두 사라진다. 넓은 풀밭이 초원으로 바뀐다. 덩달아 기분도 좋아진다.

“예초기 사지마, 위험해, 필요하면 내가 해줄게.” 청암이 신신당부한다.

예초기로 풀을 깎다가 날이 빠져 다리를 다치기도 하고 모래나 잔돌이 튀어 눈에 들어가 실명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초보 눈에도 위험한 것이 보인다. 그러나 풀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예초기가 꼭 필요했다.

진천에 있는 대형 공구상에 갔다. 공구상은 완전한 신세계였다. 남자들이 소유하고 싶은 온갖 공구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엔진 톱, 예초기, 관리기, 잔디 깎기 이름과 종류도 다양한 공구들이 나를 유혹한다.

“엔진이 좋은 것을 사셔야 오래 쓰고 풀도 잘 깎입니다.” 사장님의 추천으로 35만원을 주고 마음에 쏙 드는 날렵한 예초기를 샀다.

윤활유와 기름통, 안전 장비도 함께 구입했다. 주유소에서 휘발유 반말을 준비했다. 윤활유와 휘발유를 적정 비율로 혼합하고 예초기에 주유했다. 안전을 위해 안전 장비를 꼼꼼히 장착했다. 풀과의 전쟁을 위한 준비가 끝난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예초기 시동 거는, 줄을 힘차게 당겼다. 처음이라 그런지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드디어 시동이 걸렸다. 예초기를 등에 메고 풀들을 쳐다보며 외쳤다. “너네는 이제 끝이야.”

기세등등하게 시작했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예초기를 잡은 손은 균형을 맞추느라 잔뜩 힘이 들어갔다. 풀을 잘 깎으려면 좋은 각도와 자세가 요구되는데 허리가 앞으로 숙여져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칼날이 잘 장착되지 않았는지 균형이 깨지면서 예초기가 심하게 요동을 쳤다.

시동을 끄고 칼날을 분해했다. 흔들리지 않도록 칼날을 다시 잘 잡고 나사를 꽉 조여 주었다. 다시 시동을 거니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엔진이 돌아갔다.

균형이 잡히니 떨림도 줄어들었다. 예초기를 어깨에 멨다. 엔진의 회전 속도를 높이니 양 칼날이 둥근 원처럼 빛나며 돌아간다. 내 생애 첫 예초기 작업의 준비가 드디어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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