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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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3.06.0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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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낡고 허름한 집. 대문은 하나인데 두 가구가 산다. 상준네는 안채, 할멈네는 바깥채 단칸방, 그렇다고 할멈이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할멈은 장사 일로 늘 집을 비워야 했다. 어쨌든 단칸방이 비좁다 보니 살림살이가 방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중에는 냉장고 하나도 끼어 있었다.

그런데 이 냉장고에서 수상한 일이 벌어졌다. 언제부터인가 바람에 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때는 문이 열려 있기도 할 때가 있었다. 순간 아마 누군가 드나드는 의심이 들었다. 점점 의문은 귀를 기울게 하고 신경을 예민하게 자극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낌새가 이상해 밖을 보니 어떤 누군가 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 그 정체를 알아보려고 뒤쫓아 나가 보았지만 이미 흔적의 꼬리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의문은 의문을 물고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당 안팎에 있는 물건들은 별 탈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 보였다. 그것으로 일단 안도를 하며 의혹을 잠시 묻어 두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또다시 지난번과 같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낌새를 알아채고 재빠르게 상준은 오늘은 그가 누군지 그 정체가 무엇인지 얼굴만이라도 보아야겠다는 심정으로 나가서 보니 어떤 할머니가 정신없이 할멈네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얼굴도 보여주지 않은 채 훽하고 돌아섰다. 그녀는 곧바로 뒤돌아 보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향했다. 상준은 그녀의 뒤를 쫓으며 누구냐고 물어도 대꾸가 없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녀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못 들은 척 마냥 서둘러 대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상준은 한편으로 뭔가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유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가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물론 할멈과의 대화와 허락이 있었으리라 짐작은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의 냉장고에서 물건을 그냥 불쑥 꺼내 가는 사람을 보고 그 상황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하기야 지금도 시골 어딘가에는 대문이 없거나 대문을 열어 놓고 사는 집들을 보곤 한다.

예전엔 많은 집이 시골이 아니더라도 대문을 의식하지 않고 이웃들은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이웃집들을 드나들었다. 아마도 그녀가 평소 대문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 개방적인 사고와 가치관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어찌 보면 그녀를 이러쿵저러쿵 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의 시각에서 생각해 보면 그녀를 부정적이거나 상식에 어긋난 사람으로만은 볼 수도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시시비비 잘잘못을 따질 경우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다만 왜 한마디도 말이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지만 그 후로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러한 가치관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걸어왔다. 시대가 다르면 세상이 다르고 세상이 다르면 가치관도 달랐다. 그런 연유로 신세대와 구세대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소통의 차질을 빚어 내곤 했다. 또한 그로인해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각양각색의 일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므로 한 시대를 나만의 시각으로 판단해 가치관을 부여시키는 일은 착오적인 발상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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