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기울이면 들리는 말들
마음을 기울이면 들리는 말들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3.06.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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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그림책을 읽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환기되는 생각들이 많다. 분명 내가 알고 있던 것이고 아이들에게도 알려주며 행하길 권했던 내용인데 어느 지점에부터 인지 잊고 지냈던 아니 외면했던 점들을 일깨워준다.

주요 독자층이 어린이인지라 살아가는 동안 필요할 만한 덕목, 가치관, 관계 등을 담고 있기에 그렇다. 내용 또한 자극적이지 않도록 다듬고 굴리고 감추는 등 은유적 표현 방식으로 내용을 펴냈기에 세 번 보면 세 가지 더 생각하게 되고 세 사람과 함께 이야기 나누다 보면 열 가지 파장을 일으킨다. 독서와 독서토론의 매력이다.

화요 독서 모임의 한 회원은 집으로 들어 온 것이 있으면 날아다니는 것이든, 땅바닥에 배를 붙이고 기어 다니든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관찰하며 키운다고 한다.

어느 땐가는 채소에 붙어 있던 벌레집을 그대로 둬 보니 나비가 나온 적도 있었단다. 글쓰기의 기본은 관찰이라 주장하지만 정작 사람 아닌 것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무조건 밖으로 내보내는 요즘 나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일화였다. 그 후 나는 그림책 <홀라홀라 추추추/카슨 엘리스/웅진주니어>를 선정했다. 또 한 권의 그림책이 내게 깊이 들어온 순간이다.

홀라홀라 추추추? 사람 말만 하는 우리에겐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곤충들의 말이라 알아들을 수 없어 그렇다. 쌈빡하게도 작가는 곤충들의 언어로만 책을 냈다. `호야 호?, 앙 째르르, 차라 차라란' 등 도통 모르는 단어뿐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림책 아니던가! 그림만 봐도 충분히 내용을 알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나고 자라 성장하고 소멸하는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다. 삶의 과정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 태어날 때 느끼는 환희의 순간이 있고, 어떤 꽃을 피울지 어떤 열매를 키워 낼지 기대하는 순간, 시련을 맞는 아픈 마음, 생을 다 하고 스러져 소멸하는 순간들이 있다. 자연의 순환에 빗대어 우리네 삶을 이야기 한다.

아이를 낳고 길러본 부모라면 아이에게 가졌던 기대감으로 한껏 설레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연인, 부부지간에서도 물론 있을 것이고 밖으로는 친구나 학교, 사회에 바라는 기대 또한 갖게 된다. 시작하며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설렘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늘'이라는 매너리즘에 발목 잡히기 쉬워 그렇다. 그러면 슬슬 사람들은 끼리끼리 늘 쓰는 말이라도 알아듣질 못하는 지경까지 간다.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지기라도 하면 아예 귀를 닫기까지 한다.

문학과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 치료의 수단으로 작용 한다. 그림책 <홀라홀라 추추추>도 나에게 약이 된 책 중의 하나다. 곤충은 무조건 나에게 해를 끼치는 무리로 치부하는 생각을 잠시 멈추게 했고, 멈춤으로 자세히 들여다볼 틈을 그리고 곤충 본래의 모습을 자세히 보게 됐으니 분명 약이 된 책이다. 또한 가까이는 가족들, 나와 이견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을 기울여 귀를 열고 들어보라 일깨워 줬으니 내 삶의 폭을 넓혀준 책이 분명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풀꽃 1'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풀꽃2' 나태주 시인의 시다.

오래 봐야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시인의 지혜와 찬찬히 들여다보면 곤충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카슨 엘리스의 사고가 관통하고 있음을 독자는 본다. 문학을 접하는 즐거움이다. 문학을 멀리하지 못하는 이유다. 나를 좀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 창에 붙은 나방에 눈길을 멈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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