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주인 3
암환주인 3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3.06.0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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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시냇물 소리는 바로 부처님 설법이요.

아름다운 산은 부처님의 청정법신일세.

모름지기 보살의 길은 인욕하는 삶과 곧은 마음이네.



괴산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지금 청운사 도량도 한여름 날씨처럼 덥습니다. 이 시간에 탁마할 공안은 단도직입형 공안인 무문관 제12칙 암환주인 3입니다.

이 몸뚱이를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자동차는 그 주인이 운전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고 만약 운전하는 주인이 없다면 한낱 폐기해야 할 고철덩이에 불과합것입니다. 어떻게 버려질 자동차와 같은 고철 덩어리가 어떻게 진짜 주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진짜 주인은 오직 마음이라는 주인이 바로 우리들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지금까지 몸뚱이를 진짜 주인이라고 알고서 모셔왔다면 이 순간부터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한 순간도 여러분을 떠나지 않았던 이 주인공을 불러 보기길 바랍니다. “주인공아!”, “네” “내 말을 들어라” “네”. “이 마음자리가 진짜 주인공이니 이 마음자리 깨달으면 진짜 주인공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암환주인(巖喚主人)에 등장하는 서암언 스님(850~910)은 절강성 태주의 서암사언 선사이며 암두선사의 제자로 서암선사는 천성이 매우 둔해서 스승인 암두선사 마져 불연이 없다고 그다지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기만성이라고 느린 소가 천 리를 가듯이 선가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결국은 성공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요.

이는`주인공'은 누구이며 “네”하고 대답하는 자는 누구인가 라고 물었는데 자신이 대답했으니 선의 세계는 절대경지, 무심무아(無心無我)로 주인공과 자신은 하나라는 말이지요. 바로 주인공이랄 것도 없고 자신이랄 것도 없는 깨달은 그 자리를 뜻한다는 말입니다. “너다. 나다”라고 하는 모든 분별을 떠난 無(무)의 세계이면서 일체의 모든 것을 초월한 자리입니다.

만약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있지 않아 가짜에게 속아 살아가게 된다면 나열된 언구(言句)에 현혹 되거나 누군가가 “주인공”하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마치 서암선사가 “주인공아!”하고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말인데요. 이는 무문관 제2칙에 나오는 백장야호에서 나온 야호선의 설익은 깨달음으로 마치 대오(大悟)한 것처럼 행세하는 겁니다.

수행을 한다면서 제대로 깨치지 못한 주제에 문자를 세워서 그나마 양심은 있어 사족이라 하며 뻔뻔하게 글을 올리는 학인들에게 서암선사는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주인공을 불러 일깨우면서 결코 머무르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주인공아!” 라고 부른다면 누가 대답하겠습니까? “이 뭣고?”

혹여 지금까지 여러분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 타자가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해 자신을 부정해 왔는지요? 이는 그만큼 스스로의 행복을 포기해 왔던 것을 뜻하기도 한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결코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이 아무리 선의지를 가지고 조언을 한다고 해도 그 말에 따라 사는 순간에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깨달음의 희열이라고 하는 것이 별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서암 사언선사가 왜 아침마다 자신을 ”주인공“이라 불렀는지 그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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