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과 한마음이 된다는 것
의뢰인과 한마음이 된다는 것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3.06.0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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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변호사로서 사건을 부탁받아 당사자의 대리인이 된다는 것은 대리인의 행위가 당사자의 행위로 인정된다는 것이고 법적으로는 대리인과 당사자가 하나로 취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사건과 의뢰인들로부터 사건에 관한 한 법적인 동일체일지는 모르나, 감정적으로까지 일심(一心)이 되기란 어렵습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면서 일은 일일뿐일 수 있습니다. 의뢰인과 법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한마음이어야 변호사로서 더 성실하고 바람직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법적 다툼의 사안이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고 사실에 있어서 불편한 일인데다가 사건에 따라 트라우마로까지 남을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의뢰인의 감정에 일체의 공감을 두는 것은 실제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수행한 사건의 사례를 들어 그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례 하나, 범죄의 피해자인 것으로 보이는 의뢰인이 어찌된 것인지 손해배상청구를 당하였는데 고소하지 않고 힘들게 참고 있었는데 도리어 소송을 당하니 너무도 분하여 고소를 하자 손해배상청구 사건의 재판장이 `고소를 진즉 하지 않고 있다가 이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서 고소를 늦게 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예단을 드러내자, 필자가 `피고는 범죄의 피해자임에도 살아온 성향과 환경상 그랬을 뿐인데 마치 피고에게 이미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언성을 높이자, “증거에 입각해서 잘 판단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습니다. 그 자리에서 피고는 바로 오열을 했습니다. 대리인이 있어도 이러한데 법을 잘 알지 못하는 당사자가 나홀로 소송을 수행했다면 어떻게 재판의 진행을 감당했을까 아찔했습니다.

사례 둘, 수용자가 의뢰인인 사건들인데, 하나는 수용자가 과밀수용을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담대한 사건이었고, 또 하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용자가 교도소로부터 징벌을 받은 사안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진행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두 사례 모두 수행하기 흔치 않은 것들입니다. 앞의 사례는 수용자가 거주하는 거실별 면적에 따라 수용인원이 있는데, 교도소는 한정되고 혐오시설로 증가되기 어려운 시설이어서 수용이 과밀화되면 기준보다 더 많은 인원이 있게 되어 아무리 수용자라도 상당한 불편을 겪습니다. 2014년 부산고등법원에서 매우 전향적인 판단이 나왔는데, 1인당 2㎡(1평이 3.3㎡)에도 미치지 못할 경우 수용 과밀을 해소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대법원이 판단을 늦추면서 아직 하급심에서 의미있는 판단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위 또 하나의 사례는 영치금으로 구매한 다과를 주고 받다가 이에 불만을 품은 다른 수용자의 요청으로 외부 민원이 들어왔는데 사실관계를 다투는 의뢰인만 조사를 위해 독실 분리 수용을 하고 충분히 방어절차가 보장되지 못한 상황에서 징벌처분을 내린 사안입니다. 이로써 모범수로서 가석방을 통해 고향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유일한 희망이 당분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 수용자들 사건의 공통점은 당사자가 범죄로 인해 형벌을 받고는 있지만, 이와 무관한 환경들로 억울함을 토로하는 외톨이라는 것이고, 또 재판 수행에서 수용자 신분에 기인해 정보의 절대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국가기관이 보유하는 자료를 요청하는 증거신청에도 그러한 정보가 없다면 그만이고, 재판장조차 직권으로 이를 강제하는 노력을 소홀히 합니다.

오죽하면 수용자가 모든 걸 감수하고 교도소와 싸우고자 법원으로 간 것인데, 결국 수용자의 진술 말고는 정보의 열세로 입증이 어려워 결과가 만만치 않습니다. 증거신청조차 받아주지 않을 때 당사자에게 미안함이 들면서 변호사인 내가 한 편이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고, 참 무기력하다는 자괴감에 빠져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가끔 이렇게 감정의 소비가 커서 눈물을 몰래 훔치고 한참을 멍해 있기도 하지만, 객관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입장에 있는 의뢰인의 가장 큰 한 편이 되어주는 것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필자의 초심(初心)이자 하심(下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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