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안룡의 승부사
독안룡의 승부사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3.06.0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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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축구장엔 가뭄에 콩 나듯 간다. 응원하는 팀도 딱히 없거니와, 월드컵이나 국가대표 경기 이외엔 잘 챙겨보는 편도 아니니 축구장에 갈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내게도 축구장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 응원하는 선수 때문이었다. 요즘 그 이름을 자주 듣게 되는 김은중 감독, 내겐 샤프 김은중으로 익숙한 바로 그 김은중 선수를 따라서 말이다.

김은중 선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2년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였다. 강원FC 소속으로 대전에 원정 경기를 온 김은중 선수, 오랜만이었다. 그날은 대전 동구민에게 입장권을 무료로 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동구민이 아니었지만 입장객이 적어 무료입장권의 기회가 나에게까지 주어졌다. 동구민 혜택을 받아 입장은 했지만 나는 강원 FC 응원단 쪽으로 앉았다. 오래된 팬으로 그라운드의 김은중 선수를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다음 해 그는 포항 스틸러스로 임대되었고, 2014년에는 플레잉코치로 대전 시티즌으로 돌아와 2부 리그 우승과 함께 대전 시티즌을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그 후 벨기에 AFC 튀비즈의 코치로 가게 되면서 그의 모습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워졌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텔레비전에서 본 짧은 다큐 때문이었다. 사실 그게 뉴스였는지 다큐였는지 기억도 가물거리는 그 영상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프로축구단에 입단한 한 어린 선수의 이야기였다. 한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선수, 다큐에서는 한쪽 눈을 가린 채 뛰어보거나 공을 골대로 차보는 등의 실험도 해보였다. 한눈을 가린 채 뛰어가던 사람은 이내 넘어졌고, 골대를 겨냥하여 찬 공은 빗나가기 일쑤였다. 한 눈이 안 보여도 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뛰는 그가 궁금했고, 한 눈이 안 보여도 샤프라는 별명답게 날카로운 슛을 가진 그가 존경스러웠다.

중학교 3학년 경기 중 입은 부상으로 시력을 잃어갔다는 그는 부상으로부터의 재활에 대해 아주 덤덤했다. 냉정하고 매우 차분한 그의 성격대로 말이다. 어린 그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을텐데,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고 두 눈으로도 어려운 그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실제로 그의 선수 인생에서 선수 생명이 이제는 끝났다고 선고받을 만한 부상이 여러 번이었지만 그는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서 이전보다 더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볐고, 필요한 선수, 팀에 기여하는 선수로 살았다.

지도자로서의 그는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번 2023 U-20 월드컵에서의 김은중 감독의 축구에 대해 한 해설자는 `인내의 축구'라고 평했다. 지키고 지키고 지키다가 상대가 실수하는 틈 혹은 세트피스를 통해서 상대를 무너뜨리는 전략, 이런 전략은 감독도, 선수도, 심지어 축구를 보는 팬들에게도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빼곡한 메모가 담긴 수첩, 일희일비하지 않는 자세, 멘탈이 강하다는 것의 전형과 같은 김은중의 삶이 감독 김은중을 만든 것 아닐까? 자신이 이끄는 선수들에게 그는 축구가 제일 재밌을 나이인 지금 여한 없이 재밌게, 즐겁게 하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같은 길을 걸어온 그가 제자인 선수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라고도 했다. 4강전의 결과에 관계없이 그들은 재밌게 즐겁게 여한 없이 뛰고 돌아올 것을 나는 믿는다.

선수로 2001년 FA컵 우승, 플레잉코치로 2부 리그 우승, 김은중은 두 번의 우승을 대전에 선사했다. 그는 은퇴식에서 대전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아마도 그의 다음 여정은 감독일 것이고, 그답게 그때도 우승으로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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