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의 다리
이발사의 다리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3.06.0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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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합스부르크 가문은 혈통을 지키려고 근친상간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작용은 컸다. 유전질환으로 정신병을 앓거나 그들의 초상화를 보면 하나같이 기형이어서 보기가 불편하다.

1608년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황제는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서자 루돌프 2세를 요양차 프라하 근교 체스키크룸로프로 보냈다. 그는 이곳에서 라트란 거리의 이발사 딸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했다. 정신병자였던 그는 자신이 아내를 살해한 것조차 잊고 살인자를 찾겠다며 죄 없는 마을 주민들을 처형하기 시작했다. 사위에게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더 이상 주민들의 희생을 볼 수 없었던 이발사는 자신이 딸을 죽였다고 거짓으로 자백했다, 아내를 죽인 살인자로 장인마저 처형해 왕가와 평민의 사랑은 비운으로 끝났다. 권력을 가진 정신병자로 인해 겪었을 주민들의 공포와 불안은 상상을 초월했을 터다.

체스키크룸로프성을 올라가자면 볼타바 강 위에 세워진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발사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목조다리다. 마차가 다니던 다리 위로 자동차가 지나고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흐르는 강을 따라 아름다운 건축물이 즐비한 경이로운 풍경은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긴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 틈에서 한 남자가 이불을 두르고 서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여 불안해진다.

호롱불마저 꺼진 시골 마을의 밤은 적요하다. 별빛만 초가지붕 위로 마냥 쏟아지고 고샅길마저 한낮의 이야기를 베고 깊이 잠들어 있는 시간,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식구들을 깨웠다. 그럴 때마다 어린 나는 공포감으로 숨소리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더 커지곤 했다.

깊은 밤이면 그 아저씨는 이불을 둘러쓰고 대문 앞에 서서 줄기차게 할머니를 깨웠다. 빈번한 일이라서 잠이 깨어도 누구도 나가지 않는다. 담배 소매점을 하셨던 할머니가 참다못해 대문을 열어젖히고 큰 소리를 내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 졸랐다. 갇힌 방에서 담배를 피우다 몇 번이나 큰불이 날 뻔해서 할머니는 완강하게 거절하셨다. 아버지의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한 그분을 두고 사람들은 미쳐서 밤중에만 돌아다녀 무섭다고 했다.

아저씨는 대학을 졸업한 지식층이었다. 근사한 기와집에서 사는 유지이기도 했다. 일 년에 몇 번씩 하는 굿도 아무 소용이 없었는지 아저씨를 따라 작은아들도 정신병자가 되었다.

아줌마의 눈은 늘 충혈되어 있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공격적이어서 가까이하려는 이들이 없었다. 누구는 조상 묘를 잘못 써서 그렇다고 했고 누구는 집터가 나빠서라고도 했다. 소문만 무성했던 기와집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자손도 없이 가족들은 모두 고인이 되어 잊혔다.

권력 있는 정신질환자인 루돌프 2세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았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아저씨는 가족의 삶을 가시밭으로 몰아넣었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생을 보전하려면 정신 줄을 단단히 잡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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