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위로
나무의 위로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3.06.0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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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봄이야, 그만 일어나.” 나무에게 말했다.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하귤나무가 몸살을 끝냈다. 제주집 소소원에 심은 나무가 이제야 긴 침묵을 깨고 새순을 틔웠다. 한참 늦었다. 그이는 봄이 오자 이제나저제나 잎눈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4월이 되어서도 소식이 없자 묘목농원에 찾아가 따졌다. 그곳에서는 죽은 것이 아니니 기다려 보라는 말밖에 들려주질 않았다.

2년 전 여기로 옮겨 심은 나무다. 나무를 사 올 때는 커다란 귤이 달려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잎을 다 떨구고 열매도 떨어뜨렸다. 다음 해에도 잎을 틔우지 않고 한 해를 보내고 올해도 나목으로 서 있다. 가지에 푸른 빛이 도는 게 분명 살아있는데 깜깜무소식이다. 애태우던 나무는 6월이 되어서야 잎을 틔우기 시작한다.

나무도 변한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긴 몸살로 한동안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을 견딘 나무가 순이 나기 시작하니 기적을 보인다. 순을 통해 새로운 나무로 다시 태어난다. 볼 때마다 답답했던 하귤나무가 드디어 초록의 옷을 입고 살아났다.

나무가 그러하듯이 미국으로 떠난 아들은 가자마자 향수병을 앓는 듯했다. 그들의 말이 빨라서 잘 알아듣지 못해 답답하고 집을 얻는 일이며 차를 사기까지 전혀 다른 시스템에 애를 먹는 듯했다. 빈집에 생활용품을 채우는 일도 모든 것을 혼자서 해야 하는 외로움이 그를 힘들게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건네는 인사에 멍했다고 한다. 사거리에서는 서로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낯설었다고 했다. 공공장소에 혼자 있으면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우리와는 달리 모르는 옆 사람에게 자연스레 말을 건네는 그들이 어색했다고 했다.

9개월이 지난 지금은 미국사람이 다 되었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함께 대화도 나눈다고 한다. 빨리빨리에 익숙했던 아들이 그들 속에 물들어 적응을 마치고 몸살을 끝냈다. 볼 수도 없는 타지에서 견뎠을 아들을 생각할 때면 제주의 나무를 보는 마음이었다.

나무도, 아들도, 그리고 나의 바로 옆에 있는 그이도 몸살을 끝냈다. 앓고 난 뒤 모두 더 생기가 돈다. 염려스러웠던 그이도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기까지 억울함과 상실감으로 힘들어했다. 신은 인간에게 원망과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자신의 절대적 사랑을 깨닫게 한다. 절망 앞에서 비로소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드디어 그이의 웃음기 없는 얼굴이 다시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한결같이 눈물겹다. 그들의 몸살을 지켜보는 내내 내 마음은 탄다. 그이가 아픈 이후 죄인이 된 것 같은 마음은 왜인지 모르겠다.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나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처럼 부끄럽다. 모두 이겨내고 씩씩한데 정작 내가 이러면 안 될 일이다. 이제 스스로 얽어맨 죄의 허물을 벗고 당당해질 때다.

몸살을 이겨낸 나무는 하늘을 향해 포효한다. 나에게 주는 천상의 위로다. 해충도 잘 이겨내고 비바람도 잘 견뎌 뿌리를 튼튼히 내리리라 믿는다. 곧 꽃을 피울 것이다. 꽃이 지면 열매도 맺히리라. 지금 그이에게 찾아온 건강 적신호도 내달리느라 지친 몸을 쉬어가라는 시그널임이 분명하다. 더 오래 잘 달리기 위한 쉼표이리라.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 상처를 무서워하지 마. 살아온 흔적인 거야. 흔적이라는 삶의 꽃무늬가 내 안에 박혀 강한 세상으로 나를 이끌거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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