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도 견줄만한 영향력
신과도 견줄만한 영향력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5.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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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어느 정도 아파서는 병원 가기가 싫다. 병원만의 독특한 냄새도 싫을뿐더러 이 정도 아픈 것으로 병원까지 가야 되나 싶어서 뭉그적대다가 병을 키우기 일쑤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허리통증이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가 회진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하필이면 이 시간에 회진이람!' 누르고 있던 통증이 몰려오며 마음에 짜증이 돋았다.

그 때 병원 문을 열고 모녀인 듯한 두 사람이 들어왔다. 훤칠한 키의 아가씨와 딱 붙는 레깅스를 입은 중년 여인이었다. 몸매 무너진 중년 여자들이 레깅스를 입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던 모녀가 벌떡 일어나서 앞쪽에 있는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보호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댔던 모양이다. 모녀가 양쪽에서 할아버지를 부축하는가 싶더니 “엄마 할아버지 등을 나한테 기대게 하는 게 낫겠어”하며 딸이 제 등을 내밀어 할아버지의 등을 받쳐 주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 편하게 기대세요.” 하고 노인을 다독였다.

몸도 가누기 어려운 노인에게 등을 내주기가 나 같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젊은 아가씨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노인에게 등을 내미는 모습을 보니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노인이 정신을 놓을까봐 계속 말을 시키던 아가씨는 보호자가 나타나자 노인을 인계하고 엄마 옆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아가씨에게 가서 착한 마음씨에 감동 받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궁둥이가 들썩들썩 했다.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겠지만, 칭찬을 바라고 한 행동도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잘했다' 칭찬해주고 싶어서 입이 달싹달싹 했다. 그렇게 망설이고만 있는 사이 아가씨는 진료를 보러 들어가고 나는 그 정도의 말도 건네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양으로 아가씨의 뒷모습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개인의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행동감염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 통계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주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되어있다. 배우자가 뚱뚱하면 비만이 될 가능성이 37%높아지고, 친구가 담배를 피우면 흡연 가능성이 61% 높아진다고 한다. 한 사람이 행복하면 친구는 25% 친구의 친구는 10%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5.6% 행복해지고, 한 사람이 외로우면 친구는 50%, 친구의 친구는 25%, 친구의 친구의 친구는 10% 고독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로 인해 행복하고 불행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의 선한 행동으로 나는 며칠을 괴롭히던 통증을 잠시 잊고 마음이 훈훈했었다. 그 병원에 있었던 몇몇 사람도 나만큼의 온기를 느꼈을 것이다. 변덕스런 마음 탓인지 아가씨 엄마가 입고 있던 레깅스도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 훌륭한 딸을 키워낸 엄마의 패션취향이라면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한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세상을 어둡게도 환하게도 만들 수 있다. 빛과 어둠을 만들어 낸 신과 견줄만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저마다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신중히 행동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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