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객석만 지킬 일이 아니다
국민이 객석만 지킬 일이 아니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05.21 19:04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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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강원도 춘천에 왕진만 다니는 의사가 산다. 병원에서 환자를 맞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환자를 찾아다니며 진료하는 양창모씨가 바로 그다. 이런 의사가 전국에 2명 정도 있다고 한다. 동거 가족이 없거나 거동이 불편해 의료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고령의 독거환자들이 그의 주요 고객(?)이다. 당뇨로 시력을 잃어가는 노인, 관절통으로 종일 누워 지내는 노인, 귀에서 고름이 나와도 속수무책인 전신마비 장애인들이다.

그가 엇그제 한 일간신문에 칼럼을 실었다. 칼럼에 `나는 감방의 간수처럼 집에서 만난 노인들을 병원으로 요양원으로 밀어 넣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하루 너댓명 정도를 왕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돌보기 어려워진 노인들에게 `감옥'같은 요양원 행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자조한 말이다.

그는 의사협회와 달리 최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좌초한 간호법을 환영한다고 했다.

의료기반이 취약한 지역사회로 의료진을 보내겠다는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간호법 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내에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사람이 1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질병·장애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워 신체활동이나 가사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제공받는 노인들이다.

어찌보면 이들이야말로 간호법의 1차 당사자들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에서는 `지역돌봄 강화'라는 입법의 궁극적 목적과 수요자들은 가려지고 표 계산에 기반한 정쟁과 의료 직역간 밥그릇 싸움만 불거졌다. 코로나 시대에 영웅으로 떠받들렸던 간호사들은 졸지에 밥상을 키우기 위해 의료체계에 혼란을 야기하고 간호조무사를 차별하려는 이기주의자로 매도됐다.

생활지원사와 요양보호사들만으로 100만명에 달하는 장기요양보험 급여자들의 의료 공백까지 메울 수는 없다. 특히 의료 인프라가 부실하고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 그 중에도 농촌을 기반으로 한 군소 지자체의 사정은 심각하다. 지방 의료원은 수억대 연봉을 주고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군소 지자체의 보건소장 중 의사는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다. 해서 간호사의 활동영역을 확대한 간호법은 의사들의 외면으로 공공 의료기반마저 취약해진 지방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방정책이기도 한 것이다.

민주당은 간호법 재의결을 추진하고 국민의힘은 부결투표를 당론으로 정하겠다고 한다. 폐기 수순으로 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재의결 전에 여야가 대체입법을 추진해 법안 무산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찮다.

의사협회가 의심하는 `간호사의 단독 개원'과 간호조무사들이 문제삼는 `학력제한' 문제는 구체적인 명문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간호조무사를 비롯해 응급구조사·임상병리사·방사선사·요양보호사 등 간호법에 반대하는 직역을 설득할 수 있는 조정안 마련에 여야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병원을 방문할 수 없는 병원 밖 환자에게도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간호법의 취지에 충실해야 할 보건복지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법안에서 `지역사회'를 삭제한 조정안을 고수하며 지역돌봄 확충이라는 입법취지를 앞장서 훼손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간호법이 사망선고를 받자마자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 면허를 취소'하도록 한 의료인 면허취소법의 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한다. 간호법 사태로 의료계가 쑥대밭이 된 지금이 전과자 의사 구제에 골몰할 때인가 묻지않을 수 없다. 의사협회 후원회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양창모씨는 “간호법은 지금 내가 왕진 가서 만나는 노인들 뿐 아니라 20년, 30년 뒤 지금 노인들 자리에 있을 우리 자신의 모습도 바꾼다”고 했다. 국민이 더 이상 객석에서 구경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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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가네 2023-05-21 23:04:19
간호법 지지합니다~!!!

정수기 2023-05-21 21:37:50
간호법의 핵심을 얘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호법은 제밥그릇 채우기가 절대 아닙니다!!
지금 초고령사회의의 문제에서 나와 가족, 우리 모두가 마주하게될 문제에 꼭 필요한 법 입니다!!

김성은 2023-05-21 20:57:09
맞습니다..

에스더 2023-05-21 20:48:29
옳바른 시각으로 공정하게 바라보는언론인이 있어 다행입니다. 대한민국이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수있도록 언론이 공정한 잣대로 바라보고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공정의결과는 결국 우리국민들에게 돌아오니까요.

이상임 2023-05-21 20:36:54
간호법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