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박 풀어(解) 벗어나기(脫)
속박 풀어(解) 벗어나기(脫)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05.2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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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요즘 친일 행각, 글로벌 호구 역할을 하는 분노 유발자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 화가 난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누가 화를 내는 걸까? 나의 감각기관이나 생각이 화를 내는 건 아니다. 무언가를 탐하거나 화를 내는 건 `나'다. 이게 무슨 말일까?

우리 안에서 감정이 동요되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보고-느끼고-그 느낌이 현실화되어야 감정이 생긴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이성을 보고 흑심이 생겼다는 건, 봤고, 즐겁게 느꼈고, 애착이 생겼고, 욕심이 생겼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이성을 보고 흑심이 생기기까지는 순식간이다. 이는 보는 작용에서 감정동요에 이르기까지 개입되어 있는 여러 단계가 뭉치고(集) 들러붙어서(着) 분리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의 마음은 뭉치고 들러붙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저 인간은 저질이야'라고 말을 하거나 글로 썼다고 하자. 말로 했다면 소리를 들을 것이고, 글로 썼다면 글을 봤을 것이다. 소리를 들었건 글을 봤건 우리는 거의 동시에 저 문장의 뜻을 이해한다. 곧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동시적으로 결합되어 일어난다.

이 같은 뭉침과 들러붙음의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이성을 보고 침을 흘린다거나 분노유발자들을 보고 화를 내는 건 모두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뭉침과 들러붙음으로부터 발생하는 인간 정서는 자연스럽게 놔두면 안 되고 치유해야 한다. 곧 뭉친(執/集) 건 풀어야(解) 하고 들러붙은(着) 건 벗어나야(脫) 비로소 초연해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화를 낸다는 건 무슨 뜻일까? 본다(듣는다)고 할 때, 누가 보는(듣는) 걸까? 내가 본다(듣는다)고? 아니다. 볼 수 있는 건 눈이고 들을 수 있는 건 귀이다. 눈이 보고 귀가 듣는다. 나는? 만약에 나를 상정한다면 나는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생각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걸 동시에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나? 그런 건 없다. 보는 건 눈이고 듣는 건 귀이고 생각하는 건 마음(意)이다. 그럼 눈은 뭘 보는 걸까? 눈은 색, 형체, 운동을 볼 뿐이다. 뜻은? 눈은 볼 뿐 듣지도 않고 뜻을 파악하지 않으며, 귀는 소리를 들을 뿐 보지도 않고 뜻을 파악하지 않는다. 생각(意)은 이해할 뿐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 보고, 듣고, 이해하는 건 각기 별개의 작용이다.

이렇게 눈과 귀, 코, 혀, 몸, 마음을 따로 떼어내 풀어서 보면 그 중 어느 것도 화를 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럼 화는 누가 내는 걸까? 원래 없는 `나'라는 것이 나타나 화를 낸 것이다. 나라고 하는 행위의 주체(agent)는 우리 몸과 마음의 여러 가지 작용이 들러붙어서 하나의 단위체처럼 작동할 때 나타난다. 곧 집착의 결과물이다. 행위 주체로서의 나는 원래 없는 것이다. 사실 화를 낼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분노유발자들을 보면 화가 난다. 화를 낸다는 건 감각, 인식 작용을 다 분리시켜 나의 허구성을 보였다고 해서 이미 습관화되어 버린 나의 정서발현 형태까지 없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려준다. 곧 내 마음속에 화를 내는 주체인 `내'가 뿌리 뽑히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가동되지 않아야 비로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 분노유발자들을 보고 화를 냈다는 건 내가 아직 다 풀어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자유로우려면 멀었다는 말이다.

너의 적을 스승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분노유발자들을 보면서 나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으니 미워하기만 할 건 아닌 것 같다.

갈 길이 멀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보는 눈과 보이는 대상, 생각과 생각의 대상을 분리시켜 보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게끔 하는 길이다. 봐야 느낌이 생기는데 보지 않는다면 느낌이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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