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과 대선
이장과 대선
  • 남경훈 기자
  • 승인 2007.09.2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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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 경 훈<정치행정부장>

올 봄에 개봉됐던 영화 '이장과군수'는 어린 시절 반장과 부반장 사이였던 두 사람이 30년 뒤 이장과 군수가 되어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감정적인 갈등을 그리고 있다. 코미디극이지만 현실정치와 사회상이 순간순간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아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던 것 같다.

이장을 비롯해 통장, 반장 등 말단 행정조직에 근간을 이루는 이들이 최근 대거 사표를 냈다고 한다. 오는 12월 19일 제 17대 대통령 선거를 위해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대선 사무를 돕기 위해 사직한 통장과 이장·반장, 주민자치위원, 향토예비군 소대장급 이상 간부가 전국적으로 모두 765명인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2002년 제 16대 대선을 앞두고 사직한 통·이·반장 등 454명에 비해 68.5% 증가한 것이다. 이장과 반장까지 움직이면서 대선은 무르익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통장과 이장, 반장 등이 선거사무 관계자가 되려면 선거일 90일 전인 지난 20일까지 사직해야 했다. 이장은 엄연히 공직선거법 적용 대상으로 그만큼 중요한 자리가 됐다.

이장에 대한 평가는 요즘들어 사회변화속에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얼마전 연기군 조치원 신안 1리에서는 이장이 된 교수가 화제가 됐다.

영화에서는 어린시절 라이벌이었던 친구가 이장과 군수로 만나 경쟁심과 시기심에 티격태격한다. 반면 신안 1리 이장은 '마을 환경권'을 놓고 군수와 기업을 상대로 싸움 중이다.

영화같은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교수가 이장으로 나선 것은 마을 앞에 대규모 고층아파트가 건립되는 과정에서 전 마을이장이 주민들 몰래 가짜민원서류를 내 '1종 일반주거지역'(4층이하 제한)이던 것을 '2종 일반주거지역'(15층까지 건축가능)으로 바뀐 사실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마을 만들기를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장이란 이처럼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한없이 봉사하고 동고동락하며 현실 정치를 이뤄내는 말단의 자리다.

물론 이장을 발판으로 해서 무한대의 정치적 성장을 이뤄낸 사람도 있다.

대표 인물은 김두관 전 열린우리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다. 대통령이라는 꿈을 일단 포기했지만, 김 후보의 정치적 이력은 독특하다.

자기가 태어난 동네의 이장에서 출발하여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장관과 집권 여당의 3순위 최고위원까지의 역정은 예사롭지 않다.

김 전 장관에게서는 변방의식, 비주류의 삶이 배어 나온다. 이런 삶은 이장으로부터 출발했고, 이는 소외받고 힘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는 요소가 됐다.

꿈과 희망의 이장이지만 어두운 면도 많다. 농촌 고령화로 이장의 나이가 높아지는 것이다. 40대에 이장이 된 뒤 무려 20∼30년씩이나 장기집권하는 곳도 많다. 하려는 사람이 없다보니 돌려가면서 의무적으로 이장을 맡는 곳도 나온다. 남자 여자 할 것 없다.

그래서 30대에 이장이 되면 지역신문 화제기사로 실리곤 한다.

이장은 월수당 24만원에 상여금 농협지원금 자녀학자금 등이 주어진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니 고육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유인책 때문인지 이장과 통장 선출이 요즘들어 경선으로 치러지는 곳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나마 이런 계기로 이장들이 어깨를 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장이 이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중도에 대선 등 정치판에 휩쓸리는 과거 행태가 여전히 되풀이 되는 현실은 못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군수를 뽑는 지방선거도 아닌 대선에서 이장의 역할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나온다. 그때문인지 '이장과 대선'은 영화 '이장과 군수'보다 단어의 조합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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