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에서 자족으로
만족에서 자족으로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05.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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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세상에는 같은 듯 다른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만족(滿足) 지향의 사람들과 자족(自足) 지향의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만족지향인들의 꺾이지 않는 열정과 자족지향인들의 샘솟는 감사가 어우러져 세상사와 인간사의 건강성이 유지되고 발전됩니다. 만족한 결과를 얻어내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자족하기 위하여 탐욕과 이기를 제어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만족이란 마음에 흡족함입니다.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한 상태를 이르지요. 말은 쉽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거와 진배없어서 쉽지 않은 경지입니다. 목표와 나이와 환경에 따라 변화되고 상대성도 있어서 상응하는 노력도 있어야 하고 행운도 따라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족하면 가슴 뿌듯하고 날아갈 듯 기쁩니다.

하지만 한 번 만족으로 성이 차지 않아 이내 새롭고 진전된 가치나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자전거를 사서 좋아라했는데 어느새 자동차에 눈길이 가고, 소망했던 자리를 꿰차서 한동안 기뻤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더 유익한 자리로 눈길을 돌리는 것처럼.

집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취미생활도 그렇습니다. 영원한 부귀영화 없듯 영원한 만족도 없어 공허가 스며들기도 합니다.

자족은 스스로 족함입니다. 필요한 재화나 일을 자기 스스로 충족시킴을 이르지요. 속된 말로 마음먹기에 달려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쉬운 경지가 아닙니다. 삶의 내공이 쌓이고 인격도야가 되어야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경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이, 탐욕과 이기를 내려놓는 이, 인연과 인과에 긍정하며 사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이, 가진 것과 주어진 것에 감지덕지하는 이,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이가 바로 자족을 향유할 자격이 있습니다. 더 바랄 게 없어서, 이대로도 충분해서 자족하는 게 아니라 자족하니 더 바랄 게 없고 이대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족하려는 이는 자족하기 어렵고 자족하는 이는 만족하기 쉽습니다. 이렇듯 만족은 형상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자족은 무형적이고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연유로 젊은이들은 만족을 벗하고, 나이든 이들은 자족을 벗합니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가장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철학자 안병욱 교수도 `밝은 이성과 강한 의지에 의한 자족과 자유와 부동의 세계, 여기에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만족과 자족의 전형을 보여준 금언입니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얼마나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기자 질문에 `무조건 지금보다 더 가져야 행복합니다'라고 답했던 미국의 전설적인 부호 하워드 휴즈는 그 많은 돈을 갖고도 만족하지 못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ABC 방송국과 TWA 항공사의 지분까지 소유해 천문학적인 유산을 남겼지만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이 열 손가락 꼽을 정도였으니 잘 살았다 할 수 없음입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 타울러가 구걸하면서도 늘 웃고 사는 거지가 기이해 그와 대화를 나눕니다. `대체 당신은 누구시오?' `나는 왕이오.' `그러면 당신의 나라는 어디에 있소?' `내 마음속에 있소.' 타울러는 우습게 여기고 얕잡아본 거지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그 길로 은둔에 들어가 자족하며 살았답니다.

돈과 출세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이 곱씹어볼만한 촌철살인입니다. 누구든 때가 되면 직장과 일터에서 은퇴합니다. 직위와 직무만 내려놓는 이는 허탈하지만 만족지심까지 내려놓는 이는 홀가분합니다. 인생 2모작은 만족에서 자족으로 귀의입니다. 그러면 사는 게 모두 감사이고 축복입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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