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전차를 마시며
우전차를 마시며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3.05.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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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딸아이가 올해도 우전차(雨前茶) 한 통을 가져왔다. 지난해 것을 젖혀두고 부러 새것으로 한잔 만들어 들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햇것이라선지 찻잎이 파랗게 살아난다. 우려낸 빛깔도 향도 은은하고 곱다.

전화벨이 울린다. 여동생한테서 온 전화다. 그 애는 그동안 못 만난 회포를 풀듯 느긋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지만 음, 음, 음, 몇 마디 건성 대답으로 서둘러 수화기를 놓는다.

내 버릇이다. 통화를 간단히 하라고 누가 재촉하거나 빨리 끝내라고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끝내는 버릇이 있다. 아니 강박관념일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도 전화기에 매달려 사랑도 속삭였고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기도 했었다. 적어도 남편 사업이 실패하여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기 전까지는.

유치원에서 중3까지 고만고만한 네 아이를 키우며 밥하고 빨래나 하던 내게 닥친 시련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전화벨이 쉬지 않고 울었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빚쟁이들의 시퍼런 눈빛은 수많은 바늘이 되어 나를 겨누는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벨 소리는 저승사자의 발소리보다 무서웠다. 얼마나 몸서리치도록 혼쭐이 났는지 몇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나는 전화와 친근하지 않다.

커피도 그렇다. 커피 한 잔 마음 놓고 마실 시간도 여유도 없었지만, 기호식품이라고 여겨 커피마저 한동안 마시지 않았다. 뭐, 술이나 담배도 아니고 그까짓 커피 한 잔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하겠지만 내가 나를 다잡아야 하는 그런 마음 자세가 필요한 때이기도 했었다.

얼마 전까지 중소기업 사장의 사모였고 육성회 감투를 쓰고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아이들 학교에 얼굴을 내밀던 내가 하루아침에 한 끼의 밥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못 먹이고 못 가르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물불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시장통에 대여섯 평짜리 식당을 차리고 좌충우돌 배우며 익히며 어렵게 식당을 꾸려갔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자정 무렵 식당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퉁퉁 부은 발을 뗄 수 없어 몇 번씩 길가에 주저앉아 훌쩍거리곤 했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용기를 내야 했고 아이들 때문에 참아낼 수 있었다. `나는 여자가 아니다. 책임과 의무만 남은 엄마일 뿐이다,'하고 수없이 다짐했던 처절한 시간들.

그렇게 이 악물고 살다 보니 아이들도 다 성장했고 이제는 맛있는 집, 분위기 있는 곳을 찾을 만큼 마음의 여유도 갖게 되었지만, 형편과 시간이 되니 이제는 내 몸이 커피를 거부한다. 한 잔 마신 날 밤은 꼬박 불면증에 시달리고 속도 거북하다. 집에 사다 둔 커피는 마시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많기 마련이다.

그런 엄마를 안타까워하는 내 딸이 어느 날 우전차 한 통을 가져왔었다. 지리산 야생 우전차라는 벽개동녹차였다. 곡우 이전 싹이 돋아난 작은 잎만을 따서 만든 최상질의 차라는 것이다.

“차 맛이 다 그렇지 뭐!”대수롭지 않게 한 모금 마시는데 “아, 어쩜 이렇게 부드럽고 은은할까! 정말 좋다.”

나의 감탄에 내 딸은 오랜만에 칭찬을 들은 어린애 마냥 감격해서 울먹거리기까지 한다.

그 일이 있고부터 딸아이는 지인에게 미리미리 부탁해 두었다가 제조 일자가 선명한 우전차 한 통을 어버이날 즈음해서 몇 년째 어김없이 내게 가져온다. “엄마, 누구 주지 말고 글 쓸 때 드세요.” 똑같은 말도 잊지 않는다. 나는 딸의 마음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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