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제비 단상
제비꽃, 제비 단상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3.05.1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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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요즈음의 일상은 신록 예찬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새싹과 개화를 넘어 만물에 물이 오르고, 짙은 녹음이 우거지기 전 연초록의 향연은 눈과 마음을 맑게 합니다. 산비탈이든, 골목길이든, 돌 틈이든 가리지 않고 제비꽃이 가득합니다.

마침 제비가 돌아와 지저귀는 소리에 아침을 맞이합니다. 자연친화적인 필자는 자연의 변화에 비교적 민감한 편인데 올해는 모든 개화가 앞당겨진 것 같습니다. 4월의 벚꽃도 3월에 피었고, 5월의 아카시아꽃도 4월에 다 피기 시작했습니다. 제비도 일찍 돌아온 것 같습니다. 이른 봄의 섭리는 눈을 즐겁게 하지만 마냥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초등학교 4~5학년 시절, 오래되었지만 또렷한 잔상의 추억이 있습니다. 장난감과 키즈카페, 놀이터가 천지인 지금의 아이들과는 아주 달랐던 때입니다. 흙이 드러난 산모퉁이에서 돌을 자동차 삼아 붕붕 놀았고, 주변의 산들은 모두 묘지가 있어 묘지를 놀이터 삼아 술래잡기와 `찐돌이' 놀이를 하며 단내가 나도록 뛰어놀았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해 질 녘 동네 친구들과 형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필자는 땀을 식히고 가쁜 숨도 쉴 겸 조상님 묘 옆에 大 자로 벌러덩 누웠습니다. 바닥은 잔디와 초록 풀들이 무성히 올라와 폭신했고, 봄바람에 살랑 살갗에 닿는 풀들로 기분 좋았습니다. 보라색과 간간이 섞인 흰제비꽃이 만발해`송날'(신송리 자리메기 마을의 동산 이름)을 드넓게 뒤덮었습니다. 어찌나 강렬하게 아름다웠는지, 팀 버튼 감독의`빅피쉬'에 나온 노란색 수선화밭과 꼭 비슷했습니다. 하늘은 서정주의`푸르른 날'처럼 눈부시게 푸르렀고, 조각구름이 생생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림 같은 풍경, 상상이 되시나요?

해질녘에 눕고는 2시간을 넘게 잤습니다. 서늘한 바람이었는지, 어머니의 애타는 목소리 때문인지, 선대의 할아버지 때문인지 왜 깼는지 모르지만 벌떡 일어나고서 그제야 깜깜한 밤인 것을 알았습니다. 당황하긴 했지만 담이 없는 편이 아니어서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더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엄마, 아들 가요”. 화가 났던 어머니는 곧 차분해지시더니 10대조 조상님이 우리 손주 편히 잘 쉬라고 보호한 것이라며 저를 진정시켜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생생하게 기억할 제비꽃 추억입니다.

최근에는 필자가 사는 건물로 제비가 날아 들어와 갇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성체가 아닌 새끼가 좀 커서 몸짓이 서툰 제비 같았습니다. 새는 문과 창문을 열어 놓아도 쉽게 길을 찾지 못해 애를 먹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 애초에 동물은 출구를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잡아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만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복을 몰고 오는 영물이라 해치면 안된다. 대신 제비는 만지는 거 아니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라 빗자루를 들고 출구를 유인하며 결국 내보냈습니다.

일주일 지났을까요. 제비가 갇혀 있던 곳 근처 큰 관음죽 화분에 물을 흠뻑 주었는데 물이 찬 화분 받침대에 제비가 죽어 있었습니다. 크지 않은 것이 꼭 얼마 전 바깥으로 내보낸 녀석 같았습니다. 건물 모퉁이 텃밭에 깊숙이 묻어주었습니다. 먼 남쪽에서 날아 왔을 텐데 훨훨 자유로운 몸짓을 더 하지 못하고 귀천한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역시 자연의 순리겠지요.

제비는 왔던 곳에 가족이었던 그 새끼가 다시 와서 둥지를 튼다고 합니다. 죽은 제비에게 미안해서, 다시 찾은 제비가 고마워서 그 똥도 기쁘게 치울 것입니다. 제비꽃 만발하고, 제비가 날아든 5월의 푸른 하늘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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