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꽃
패랭이꽃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05.0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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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계절과 상관없이 수많은 꽃이 피고 지는데, 그들의 순위를 과연 매길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은 있겠지만 그것이 곧 꽃의 우열을 재는 절대적인 잣대는 아닐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정습명(鄭襲明)은 꽃 중에 사람들이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꽃 하나에 유독 눈길이 끌렸다.


패랭이꽃(石竹花)

世愛牧丹紅(세애목단홍) 사람들은 모란의 붉은 꽃을 좋아하여
栽培滿院中(재배만원중) 뜰 안 가득 심어 가꾸지만
誰知荒草野(수지황초야) 거친 풀 무성한 들판에도
亦有好花叢(역유호화총) 아리따운 꽃 떨기 있다는 것을 누가 아려나?
色透村塘月(색투촌당월) 빛은 연못에 내린 달빛에 환히 비치고
香傳壟樹風(향전롱수풍) 향기는 언덕 나무 바람을 타고 전해 오네
地偏公子少(지편공자소) 외진 곳이라 귀한 이도 드물어
嬌態屬田翁(교태속전옹) 고운 자태 오직 늙은 농부 차지라네

흔히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싱그러운 연둣빛 잎새와 모란을 비롯한 화려한 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기를 빛내는 잘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이 수없이 많다.

시인은 그 중 하나로 패랭이꽃을 들고 있다.

호사가들이 그 붉은빛을 좋아하여 정원에 심어 가꾸며 애지중지하는 모란과 처지는 다르지만, 아리따움이라는 측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들꽃 하나에 시인은 흠뻑 빠져들었다.

거친 들판 무성한 잡초들 사이에서 무리를 이루어 고운 자태를 뽐내는 패랭이꽃이 그것이다.

특히 연못 속 달빛에 환히 빛나는 그 빛깔과 작은 언덕 나무에 이는 바람을 타고 전해 오는 그 향기에 시인은 매료되었다.

이 꽃은 외진 데 피기 때문에 높은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니, 그 고운 자태를 독차지하는 사람은 거기서 농사를 짓는 늙은 농부일 뿐이다.

패랭이꽃을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만 보면 늙은 농부가 귀공자보다 더 나은 처지인 것이다.

여름으로 가는 징검다리 달이 오월이다.

눈만 뜨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이 신록이요 화사한 꽃들이다.

모란이나 장미처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름 모를 꽃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패랭이꽃도 그 중 하나이다. 산야를 거닐다가 뜻하지 않게 이 꽃을 만난다면, 이 시절의 가장 큰 행운일 것이다.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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