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의 딸
빨치산의 딸
  • 김현숙 괴산교육도서관 관장
  • 승인 2023.05.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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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 읽기
김현숙 괴산교육도서관 관장
김현숙 괴산교육도서관 관장

 

괴산교육도서관 북클럽 활동을 시작했다. 딱 5명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북클럽은 6명 등록 소식에 쾌재를 불렀건만, 함께 하지 못한다는 연락만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진 야속한 회원을 제외하고, 첫 모임에 3명이 모였다. 첫 모임에는 서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모임은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간단한 향후 모임 방법에 대한 짧은 논의와 함께 책을 많이 읽자는 굳은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의욕에 넘친 회원들의 선택한 책은 정지아 작가의 첫 소설집`빨치산의 딸'이다.

이 책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베스트 셀러 작가 대열에 합류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정지아 작가의 첫 작품으로 출간 직후 공안당국에 의해 이적표현물로 분류돼 판금 조치를 당했다가 1990년 실천문학사에서 2권으로 새롭게 복간한 책이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조선은 해방 후 곧바로 혼란에 휩싸인다. 나라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둘로 쪼개지고, 민중은 식량난에 허덕이며, 전국적으로 총파업이 일어난다. 구례구 철도원으로 일하던 청년 정운창은 이런 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남로당에 가입해 새로운 이름 `유혁운'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옥자'라는 가명으로 남로당에 가입한 여성은 남녀가 똑같이 대우받는 세상에 대한 꿈을 품고 남로당 활동에 열심이다.

열성적인 남로당원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구빨치는 정부의 끈질긴 토벌작전으로 와해 위기에 처하고,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힌 인민군이 대거 합세해 후방 교란작전을 펼치나 연합군의 대대적인 토벌작전과 믿었던 북조선노동당의 배신으로 허망한 최후를 맞게 되는 빨치산 이야기를, 작가 정지아가 남로당의 일원이었던 부모님의 삶을 재구성하여 쓴 실화 소설이다.

지리산 자락 일대에서 활동했던 4년의 남로당 활동은 추운 겨울 맨발로 눈산을 헤매어 시리고 굶주림에 허덕였으며, 생사의 갈림길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이어진 내용까지 추론해보면, 빨갱이 활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은, 아니 일가친척까지 연좌제의 고통에 시달렸으며, 아버지는 일가친척들의 원망을 온몸으로 받으며 한평생을 사셨다. 4년의 빨치산 활동이 한평생을 옥죄였다.

이 모든 일들은 현재와 멀지 않은 과거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개념도 확실치 않은 민중이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놓는 처절한 반란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계절의 여왕 5월답게 오늘 괴산 날씨는 화창하다. 도서관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앞마당 800년 느티나무의 녹음은 싱그럽다. 내가 누리는 이 평온함이 누군가의 목숨값이겠거니 생각이 드니, 잔디밭 삐쭉 솟아난 잡초마저 소중해 보인다.

이 책은 혁명을 위해 열정을 다한 이름 모를 이들의 여리기만 한 삶을 만나볼 수 있고, 그들은 그저 저마다의 삶을 살아온 우리 옆집의 평범한 이웃이었음을 알 수 있는 소설책이다. 무거운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서글픈 일화에도 실실 웃음이 나올 만큼 웃음을 더하여 어쩌면 웃프기까지 한 책을 소개한다. 지금이라도 그들에게 따스한 마음을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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