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놈들과 고놈들의 삶
요놈들과 고놈들의 삶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05.07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친한 후배가 묻는다. 형은 왜 절에 들어가 살아? 수행하려고. 수행을 왜 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죄를 많이 지었잖아. 이대로 죽으면 지옥행이야. 참회해서 지은 죄를 씻어야 그나마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지 않겠어? 나 같은 사람은 마음 닦는 일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아~, 형은 꼭 마음을 닦아야겠네. 그런데 나도 형과 마찬가지로 속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어. 사업을 하다 보면 온갖 못된 짓을 할 수밖에 없고 가정에 면목없는 일도 많이 해왔거든. 그렇지, 너도 내가 보기에는 수행이 필수인 인간 중 하나야.

인과응보는 행위를 하면 그에 따른 과보를 반드시 받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과보 없는 행위가 없다고 하면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과응보를 인정하는 자가 살면서 부끄러운 일이 있다면 대충 삶을 마무리하기는 어렵다. 후배와 나는 인과응보를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후배와 나는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과응보를 믿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 부끄러움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참회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요놈들이다.

요놈들 말고 고놈들이 있다. 고놈들은 삶을 떳떳하게 살아서 구태여 참회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떳떳하다는 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고놈들은 세상의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충실하게 충족시켜서 흠을 잡을 수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런 사람들은 참회를 하거나 마음을 닦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고놈들은 내세에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기에 요놈들이 겪는 위기의식이 없어서 마음 닦는 일에 절박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한 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과보를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닦는다. 나는 그에게 왜 해코지를 했을까? 그놈이 미워서. 미워한다는 건 뭘까? 그 사람을 보고 생긴 즐겁지 않은(괴로운) 느낌이 적의로 현실화되어 나타났다는 걸 의미한다. 내가 상대를 보고 즐겁지는 않지만 그걸 적의로 현실화하여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면 나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를 보고 즐거운 느낌이 들어 그 사람에 대해 애착하는 마음이 생겨 애정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운 이성을 보고 즐거운 느낌만을 갖고 행위로 옮기지 않으면 삶에 우여곡절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다. 나는 느낌을 행위로 옮겨서 삶이 파란만장했고 고놈들은 행위로 옮기지 않을 절제력이 있어서 삶이 평탄하다.

참회를 동반한 수행을 하다 보면 일어난 느낌을 행위로 옮기지 않는데 그치지 않게 된다. 요놈들은 느낌을 행위로 옮기지 않는데 만족하지 않고 이런 느낌의 출처를 캐묻는다. 이 지점에서 요놈들이 고놈들보다 나을 가능성이 생긴다. 고놈들은 인생을 잘 살아서 참회 어린 수행을 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래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기준을 충족하는 데서 멈춘다. 요놈들은 참회하면서 `왜 대상에 대한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는 걸까?'를 묻는다. 이런 캐물음이 있고 없고가 요놈들과 저놈들을 가르는 기준이다.

이후는 요놈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왜 느낌이 생길까? 그건 그 대상을 봤기 때문에 생긴다. 보지 않으면 느낌이 생기지 않는다. 곧 감각적으로 경험하지 않거나 머리로 생각하지 않으면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다.

왜 보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그건 눈이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눈이 없으면 볼 수 없고 마음이 없으면 생각하지 않는다. 눈이나 마음은 어떻게 해서 있게 되는 걸까? 이 이후는 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지만 어쨌든 두세 단계를 더 건너가 보면 세상에 태어나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부끄러운 삶의 현장에 다시 안 태어날 수 있다면 그건 인생 대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