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게노에게 희망의 노래를
파파게노에게 희망의 노래를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04.3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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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신앙심 깊은 한 친구가 있다. 사람이 욕심과 유혹에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늘 경계하며 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친구이다.

그 친구가 대화 중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감사이다. 작은 것에서도 감사해야 할 이유를 잘도 찾아낸다.

딸들이 속을 썩일 때나, 남편이 서운하게 할 때 하소연을 하면, 사람인 이상 그만큼도 안 하면 숨 막혀 살겠느냐면서 딸과 남편의 역성을 든다. 남편은 이래이래서 좋은 사람이고 딸들은 이래이래서 예쁘다며 내가 못 보았던 식구들의 장점을 얘기해준다. 그 얘기를 듣다 보면 나도 어느새 서운함이나 속상함 같은 것은 잊고 남편은 이게 예쁘고, 딸들은 이게 예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날은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학교에서 돌아온 딸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래서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반갑게 맞이하고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낸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로 실려 간다고 하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자살을 설계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하기까지는 유명인의 극단 선택을 보고 거기에 공감해서 내지 말아야 할 용기를 내는 베르테르 효과도 한몫을 한다고 한다.

사람은 어느 순간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 때때로 좌절의 순간을 맞볼 수밖에 없다.

이때 맞닥뜨린 것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세세한 보도가 아니라 그럼에도 잘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어땠을까? 이들 가까이에 내 친구 같은 사람이 있어서 힘을 내야 하는 이유를 수시로 찾아 주었다면 어땠을까?

말에는 부풀리는 힘이 있어서 좋은 말을 하면 좋은 마음이 배가 되고, 나쁜 말을 하면 나쁜 마음이 배가 된다. 누군가와 마주앉아 사는 게 힘들다는 얘기를 나누고 나면 정말 사는 게 힘든 사람 같아진다. 주변 사람의 미운 점을 세세하게 얘기하고 나면 그 미움이 구체화되어서 그 사람이 다시 보기 힘들만큼 미워진다. 그러니 나쁜 말은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하는 순간 뭉뚱그려져 있던 감정은 형태를 갖춰 확신이 되고 마음은 지옥이 되니 말이다.

자살을 부추기는 베르테르 효과에 반대되는 말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파파게노의 이름에서 따온 파파게노 효과가 있다. 연인이 사라지자 괴로운 나머지 자살을 시도하는 파파게노에게 요정이 나타나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어 자살 충동을 극복하게 되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파파게노에게 희망의 노래를 들려준 요정처럼 이 시대의 우리는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왕에 에너지 소비하며 말을 할 바에는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럴 수도 있다. 누구나 다 그렇다. 지금은 어려워도 마지막은 분명 좋을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사실을 환기시키는 말보다는 사실을 극복하게 하는 말을 해야 한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아버지를 둔 친구가 있었다.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친구였는데 어느 눈 내리는 날 카페에 앉아 자기가 가장 증오하는 사람은 아버지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의 죽음이 트라우마가 되어 삶의 곳곳에서 목을 조른다는 것이다. 자살은 그렇게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사람까지 암흑으로 몰아넣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본 이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다던 그 친구는 지금 어찌 지내고 있는지 소식 끊긴 지 오랜 옛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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