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민심과 신정아를 위한 변명
추석 민심과 신정아를 위한 변명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27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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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전례없이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나면서 정치권이 이른바 '추석 민심'을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해졌다. 보나마나 정당에 따른 아전인수가 분명하겠지만, 그래도 연휴 내내 변함없이 민심의 중심에 선 것이 하나 있다. 변양균-신정아 얘기다. 앉았다 하면 여지없이 두 사람이 거론됐고, 모였다 하면 성토가 이어졌다.

이로 인한 민심은 일견 참여정부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질타로 보여졌지만, 결론은 정치권을 향한 총체적 불신이었다. 안타깝게도 올 추석민심의 요체는 세상에 믿을 X이 없고 현재 거론되는 대선후보들 모두가 아직은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국민적 정치불신이 과연 앞으로 어떤 추구(追求)를 이어갈지…, 연휴를 거치면서 되레 더 궁금증만 더해졌다.

변양균-신정아 추문은 어쩔 수 없이 이미 대선의 큰 변수가 됐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사건은 역사적으로, 혹은 우리 주변에서 늘 있어 왔고 그 결과 또한 유사한 경우가 많았다. 당장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 신정아 사례처럼 권력과 여성의 관계에서 불거진 스캔들의 종말은 대개 당사자, 특히 여성의 비극으로 끝나지만 막상 사건의 실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력형 추문의 전범(典範)처럼 여겨지는 프로퓨모-킬러 사건만 봐도 그렇다. 1963년 영국 육군장관 존 프로퓨모와 미모의 여인 크리스틴 킬러의 애정행각은 두 사람의 스파이 활동을 의심한 영국 정부가 특별 조사위원회까지 만들면서 연일 세계 언론을 장식했다. 조사위원회가 당시 수상과 장관, 국회의원 등 무려 200여명을 중인으로 불러 청문을 벌이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결론은 "혐의없다"였다. 권력에 빌붙어 화려함만을 좇던 킬러는 말년에 생활보호대상자로 추락해 근근이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동서 고금을 통해 세기적 스파이로 인정받는(?) 마타하리는 1차대전을 배경으로 유럽을 농락하다가 41세의 한창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그녀의 스파이 혐의를 인정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당시 재판 기록이 국가기밀문서로 분류되는 바람에 오는 2017년에야 공개토록 되어 있어 그 진실을 알기 위해선 앞으로 10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24세의 나이차에도 불구, 히틀러의 평생 동지를 자처한 에바 브라운은 히틀러와의 결혼 단 하루만에 비참한 최후를 맞아 즉석에서 불태워졌으며, 박정희 정권의 핵심까지 들먹이게 한 정인숙은 1970년 3월 17일 밤 승용차 안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는데도 지금까지 이 사건의 진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왕관을 버리고 사랑을 택했다 하여 아직도 세기적 로맨스로 각인돼 있는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의 사랑도 실은 오래가지 못했다. 겉으로 나타난 순애보와는 다르게 평탄치 못한 결혼생활 때문에 그들은 대외활동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악착같이 위장하는 고역을 감수해야만 한 것이다. 나중에 이들의 회고록을 쓴 작가는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해 "비참하게 끝난 동화같은 이야기"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권력형 남녀 스캔들은 여성의 비극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상대인 남성들도 사회적으로 매도되거나 엄청난 곤혹을 치렀다. 때문에 이런 추문이 생길 때마다 꼭 여성만을 권력의 부나비로 몰고 가는 사회적 인식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권력의 온기에 맛들인 여자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 권력을 앞세워 여성을 탐하거나, 또 그 여성을 이용하려는 남자에게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금 신정아는 남성 우월주의가 빚어 낸 권력의 허구, 정치의 허구, 더 나아가 삶의 허구에 온 몸으로 맞서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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